실컷 놀았는데도 더 놀자고 조르던 꼬맹이 조카들. 힘에 부쳐 '그만 놀자' 말하면 금방 실망하는 얼굴. 어린아이의 흐린 얼굴을 마주하면 엄마의 공백으로 풀 죽어 있던 내 옛 모습이 둥실 떠 오른다. 마음이 편치 않아 '조금 더 놀자' 말하면 그늘진 얼굴이 다시 반짝반짝. 조카들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힘든 마음 사라지고 내 얼굴도 방긋해졌다.
"삼촌은 좋은 사람 같아"
아장아장 걷던 아기였는데 이젠 대나무같이 쑥쑥 커버린 조카들. 신나게 놀던 기억들 때문일까. 나를 보면 자꾸 '좋은 사람'이라 말한다. 좋은 사람. 나는 따뜻한 감정을 품은 사람처럼 불리는 게 낯설다. 기쁨을 채우는 일보다 슬픔을 비워내는 일이 더 많았던 탓이다. 어쨌든 뿌듯하다. 조카들에게 뭔가 미소 지을 수 있는 추억을 선물한 것 같아서.
"햇살씨는 정이 많은 사람이야."
직장에서 잠깐동안 같이 일했던 도우미 아주머니. 잠시 스치는 관계라는 타인들의 차가운 시선에 한기를 느낄 것 같아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을 자주 건넸다.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내게 말했다. 정이 많은 사람 같다고. 역시 생경하게 들린다. 엄마의 정을 그리워하며 살았는데 정이 많은 사람이라 불리는 건 뭔가 모순 같다.
의아할 때가 있다. 마음이 텅 비었던 내게도 내어 줄 온기가 있다는 것이. 충분하지 않고 모자라도 베풀 수 있는 마음.자기 삶도 팍팍한데 얼마 안 되는 월세 보증금마저 기부하고 생을 마감한 어떤 김밥 할머니처럼 나눔엔 역설적인 면이 있어서 그런 걸까. 뭔지 잘 모르겠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어서 외롭기만 한 게 아니라 비었어도 따뜻한 나눔이 가능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