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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Oct 16. 2024

마침표 없는 마음


# 기억의 조각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면서 슬픈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다.


"딸, 아침 꼭 먹고 출근해."

집 근처 공원에서 걷다가 듣게 된 어떤 엄마의 말. 수화기 너머 들리는 음성을 듣고 이어지는 엄마의 한 마디.

"그래, 우리 딸 고맙고 미안해"

버스 정류장을 지나칠 때 통화하던 어떤 아들의 말.

"엄마, 뭐가 자꾸 미안해. 내 걱정 그만하고 엄마 건강이나 잘 챙겨."


 좁은 골목길.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리어카에 파지 한가득 싣고 가는 할머니가 보였다. 걸음걸이가 빠른 나는 금세 할머니의 리어카에 이르렀다. 길이 좁아서 앞서 가지 앉고 리어카 속도에 맞춰 걷던 차, 할머니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이고, 미안해요, 내가 불편하게 했네."

 그 순간, 조금 천천히 걸을 걸 싶었다. 엄마 닮은 사람한테 듣는 미안하다는 말에 내가 더 미안해지는 마음이 들어 한 마디 건넸다.

"아니에요. 제가 미안해요. 괜히 할머니 마음 급하게 너무 빨리 걸었네요."


 미안하다는 말에 서로 멋쩍은 웃음을 지은 뒤, 나는 할머니의 리어카를 밀어 드렸다. 잠시 후 도착한 할머니 집. 할머니는 캔 음료를 건네주며 말했다.

"너무 번거롭게 한 것 같네요. 도와줘서 고맙고 미안해요."


 세상 모든 엄마들의 '미안하다'는 말. 그건 '사랑한다'는 말과 같다. 엄마들의 미안함 속엔 충분한데도 모자라진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 들어 있기 때문이다. 길에서 만난 할머니처럼 자꾸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건 부작용일지 모른다. 평생 자식을 사랑하면서 생긴 부작용 말이다. 내겐 다른 부작용이 있다. 미안함의 결핍, 엄마 사랑을 받지 못해 생긴 증상. 그건 매일 똑같은 길을 걸으며 '미안함과 사랑'이 깃든 노랫말을 반복해서 듣는 일이다.     

 



# 비 오는 날의 편지


엄마.

주변 사람들이 엄마랑 통화하면

자주 하는 말이 있어.

'엄마, 괜찮으니까 그만 좀 신경 써'


사람들은

엄마가 간섭한다고 투덜대지만

난 반찬투정 같은 이런 불평이 부러울 때가 있어.


나라면 말이야.

신경 쓰지 말라는 말 대신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할 것 같아.


난 알아.

엄마의 간섭 속엔 이미 충분한데도 

더 내어 주는 마음이 숨어 있다는 걸.


엄마.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랑은

아마 엄마 사랑일 거야.

자꾸 내어 주기만 하고 돌려받지 못하니까.


그런데도 참 희한해.

그 사랑에 마침표가 없어.

받는 쪽에선 사랑인지 몰라도

주는 쪽에선 끊임없이 사랑을 건네는 마음.

이 미련한 사랑을 평생 할 수 있으니까

엄마 사랑이 위대하다고 하는 걸까.  


엄마.

엄마의 무한 사랑에도 부작용은 있어.

난 그게 '미안하다'는 말이라고 생각해.

길에서 만난 엄마들은 하나같이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거든.  


이상도 하지.

아낌없이 주어도 모자란 느낌 때문에

계속 사랑을 건네는 건데

그 마음에 왜 미안함까지 담아야만 하는 걸까.


사랑받는 사람도 부작용이 생긴 것 같아.

과하게 사랑받아서

사랑을 간섭으로 부르는 증상 말이야.


엄마.

나한텐 조금 다른 부작용이 있어.

미안하다를 반복하는 엄마 사랑처럼

슬픈 노랫말을 반복해서 듣고 있어.


미안함과 사랑 담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일.

이건 엄마를 그리워하는 습관이자

엄마 사랑을 까먹지 않게 만드는 일이야.

그래서 따뜻하고 정겹게 다가갈 수 있는 건지 몰라.

길에서 만났던 할머니나 엄마 닮은 사람들에게.


엄마를 다시 만나야만

신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엄마를 그리워하는 행동이 슬픈 음악을 듣는 일이니까. 


엄마.

신나는 노래를 듣게 되는 날,

나한테 주지 못했던 엄마 사랑, 과즙처럼 듬뿍 내어 줄래?


엄마가 내어주는 그 사랑.

아무리 받아도 나는 간섭이라 느끼지 않을 것 같아.

아무리 주어도 엄마가 미안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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