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공원에서 걷다가 듣게 된 어떤 엄마의 말. 수화기 너머 들리는 음성을 듣고 이어지는 엄마의 한 마디.
"그래, 우리 딸 고맙고 미안해"
버스 정류장을 지나칠 때 통화하던 어떤 아들의 말.
"엄마, 뭐가 자꾸 미안해. 내 걱정 그만하고 엄마 건강이나 잘 챙겨."
좁은 골목길.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리어카에 파지 한가득 싣고 가는 할머니가 보였다. 걸음걸이가 빠른 나는 금세 할머니의 리어카에 이르렀다. 길이 좁아서 앞서 가지 앉고 리어카 속도에 맞춰 걷던 차, 할머니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이고,미안해요, 내가 불편하게 했네."
그 순간, 조금 천천히 걸을 걸 싶었다. 엄마 닮은 사람한테 듣는 미안하다는 말에 내가 더 미안해지는 마음이 들어 한 마디 건넸다.
"아니에요. 제가 미안해요. 괜히 할머니 마음 급하게 너무 빨리 걸었네요."
미안하다는 말에 서로 멋쩍은 웃음을 지은 뒤, 나는 할머니의 리어카를 밀어 드렸다. 잠시 후 도착한 할머니 집. 할머니는 캔 음료를 건네주며 말했다.
"너무 번거롭게 한 것 같네요. 도와줘서 고맙고 미안해요."
세상 모든 엄마들의 '미안하다'는 말. 그건 '사랑한다'는 말과 같다. 엄마들의 미안함 속엔 충분한데도 모자라진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만들어 있기 때문이다. 길에서 만난 할머니처럼 자꾸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건 부작용일지 모른다. 평생 자식을 사랑하면서 생긴 부작용 말이다. 내겐 다른 부작용이 있다. 미안함의 결핍, 엄마 사랑을 받지 못해 생긴 증상. 그건 매일 똑같은 길을 걸으며 '미안함과 사랑'이 깃든 노랫말을 반복해서 듣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