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기성 Nov 05. 2024

내가 쓴 책은 누가 사 보는 걸까


얼마 전 성당 친구들의 모임에 다녀왔다. 모임에는 내가 책을 낸다고 할 때마다 그때그때 책을 사보는 고마운 친구들이 몇 명 있는데, K도 그중 한 명이다.

모임에서 만난 K는 내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앞서 출간된 책 두 권은 때마다 사봤지만, 그때로부터 두 권이 더 출간되었는지는 몰랐다며 겸연쩍어했다. 그러고는 다짐하듯 꼭 사보겠다고 내게 힘주어 말하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K가 내게 있어서는 VIP 고객 아닌가? 그런데 오히려 친구가 책을 사보지 못했다며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며 만류하고 싶었지만 그럴 틈도 없이 왁자지껄하게 이어진 친구들의 방담에 묻혀 민망하고 쑥스러운 웃음을 짓고는 그 순간을 슬쩍 넘겼을 뿐이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났는데 문득문득 그때 친구가 내게 건넨 말이 자꾸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쓴 책을 K에게 한 번도 전해준 적이 없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랐다. 다른 친구에게는 책이 나오면 먼저 보내주곤 했었는데, 매번 먼저 사본다는 K에게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줍음이 많아 서슴거리며 뻘쭘해하는 나를 언제나 먼저 챙겨주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언제나 내가 챙김을 받는 쪽에 서 있었다는 생각에 닿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고, 이번에는 K에게 꼭 내가 쓴 책을 먼저 전해주어야겠다고 그때 생각하게 되었다.


며칠 후 일을 마치고 친구의 사무실에 들렀다. 그동안 책 한 권 건네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이 담긴 글을 앞장에 적어 놓은 책을 들고서. 갑작스러운 방문에 친구는 깜짝 놀라 하면서 손에 두툼한 뭔가를 들고 나왔다. 아직 사보지 못했다며 꼭 사서 읽어보겠다던, 내가 쓴 두 권의 책이었다. 친구는 양손으로 두 권의 책을 들어 보이고는 서점 나간 김에 사 왔다며 내 앞에서 해맑게 웃어 보였다.

아아, 나는 그 자리에서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내 얼굴에 지어진 망연한 표정을 K도 읽었을까. 나는 친구의 다짐보다 한발 늦었고, 언제나 늦는 편이구나 그제야 깨달았고, 그 순간이 민망하고 신기하고 울컥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고. 그저 내가 썼다는 사실만으로 책을 사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얼굴 한 번 뵌 적 없지만 어떤 인연으로 내가 쓴 책을 꾸준히 사보는 사람도 있다. U가 다니던 회사의 대표로 재직하셨던 S 선생님이 그렇다. 지금은 서로 회사에 없지만 과거의 직장 동료나 선후배, 상하관계를 떠나 동반자적 관계로 U의 곁에 넉넉히 있어 주시면서 가끔씩 넘치고 고마운 도움과 조언을 건네주시는 분이기도 하다. 책이 나올 때마다 U가 책을 보내드리겠다 하지만 선생님은 한사코 저어하고는 언제나 서점에 들러 직접 책을 구매한다고 했다. 먼저 K가 그랬듯 전 대표님도 항상 다짐하듯 책은 내가 서점에서 사 봐야 하는 거지, 그렇게 U에게 그렇게 말하곤 한다고 들었다. 결심과 다짐에 가까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면 마음이 물러진다. 내가 어떤 도움을 드리는 것도 아닌데 책을 챙겨보시는 분들께 어떻게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 때문일까.

그 외에도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분들이 관심을 갖고 책을 직접 구매해 보았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아, 내 글이, 내 소설이, 이야기가, 책이 담긴 메시지가 정말 좋다고 생각해서 구매했을 거라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는다. 어떤 부끄러움의 수면 아래로 자맥질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거기에 아무 연고와 인연도 없이 그저 책의 정보와 낯 모르는 저자의 이름을 보고 책을 구매하는 대다수의 독자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움은 배가 된다. 독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게만 느껴지고. 모르는 독자들이 책을 사서 책장을 열고 거기 담긴 문장과 이야기들을 독해하며 따라 읽는다는 걸 상상하면 그때 어떤 벅참이 차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대체 이 세상의 누가 내가 쓴 책을 사 읽는 걸까? 책이 많이 팔리고 팔리지 않는 것을 떠나 누군가 내가 쓴 책을 읽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감화를 받는다. 내가 쓰는 존재라는 생각이 그때만큼 강하게 들 때가 없다. 어떤 마음의 빚이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고 더 좋은 글을 쓰는 것 외로는 갚을 길이 없다는 걸 고요히 인식하게 되니까.


경영전문가인 케빈캘리는 디지털 시장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백 만 명의 고객이나 수백만 달러가 아니라 천 명의 진정한 팬(고객)이 필요하다고 했다. 천 명. 내게 그런 천 명이 있을까. 내가 어떤 글을 써도 보아주고 다가오는 그런 독자들, 가족, S선생님, K, 성당, 대학 친구들, U의 지인들, 옛 동료, 베트남에서도 책을 사보는 친구, 그렇게 하나하나 모아보면 천 명이…… 이런 얘기는 그만하자.  


어쨌든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단 하나의 깃발을 꽂을 수 있다면,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마음의 빚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기회를 빌어 얘기하고 싶다. 저의 글을, 책을 직접 건져내어 읽어주시는 눈 밝은 독자분들에 감사드린다고.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좋은 글을 써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