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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주의
by
조민성
Oct 26. 2019
"난 한국 꽃들이 더 좋아요."
농장에 놀러 오셨던 분이 대뜸 관심 없다는 투로 말씀하셨다.
봄날의 농장은 내가 심었던 꽃들이 피어나 숲 속 여기저기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었는데 난 한창 새로운 수선화 품종 이야기에 심취해 혼자 떠들던 중이었다.
"토종 야생화들은 눈에 잘 안 띄지 않나요?"
"저는 그런 수수한 매력이 좋더라고요."
- 취향이라는 건 다양하니까.
고개를 끄덕거리는 나를 보곤 이내 주위를 둘러보시더니 물으셨다.
"근데 여긴 한국 꽃은 안 심으시나 보네요."
심란해졌다.
-얘기할까, 말까.
난 조금 고민하다 말씀드렸다.
"지금 서 계신 곳이 토종 은방울꽃 군락지예요."
토종 은방울꽃
슬픈 토종 꽃들.
토종 꽃들은 눈에 잘 안 띈다.
귀해서 그런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고 도처에 깔려있다.
자생 백합
토종 꽃들을 보기 힘든
건 우리 눈에 너무 익숙해서 도리어 인지하기 힘든 이유도 있고 야생에서 뿌리를 통해 여러 해를 살아가는 꽃들이 대개 생존능력을 먼저
택하기
때문에 화려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좋게 말하면 수수하다고 말할 수 있고, 있는 그대로 얘기하면 눈에 잘 안 띈다.
나쁘게 얘기하면 눈을 씻고 봐도 안 보이고, 세속적으로 얘기하면 돈 될게 안 보인다.
심지어 크기도 작은 편이다.
원예용 백합
토종 야생화 중에서 가장 예쁘다고 할 수 있는 꽃들 중 몇 개를 골라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서양 꽃들 사이에 섞어놓으면 웬 들풀이 껴있나 싶은 느낌이 들
정도다.
오랑캐들.
서양 꽃들은 참 예쁘다.
간혹 방향성을 잘못 잡은 탓에 필요 이상으로 과해 보이는 꽃들도 제법 많지만 대부분은 목표 지점에 잘 도달해 사람들의 시선을 뺐고 향마저 화려한 꽃들이 즐비하다.
외래종 식물들이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기사가 허구한 날
나오지만 핑크 뮬리처럼 꽃이 예쁘면
용서가 된다.
'튤립의 알록달록한 생태계 교란' '외래종 오리엔탈 백합 향기가 지나가는 행인들을 덮쳐'
같은
기사가 나오면 되려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점점 생명력이 강한 개량종들도 많이 나오고 국내에서 재배하는 방법만 더 정리되면, 국내 거리에서도 신기하고 예쁜 꽃들을 흔히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괜스레 기대마저 된다.
예쁘면 다 용서된다는 말이 꽃들의 세계에서는 너무 당연한 개념이다.
정원이라는 문화.
정원은 본디 상상을 시각적으로 보이는 형태로 만들면서 시작된 문화다.
제국과 왕국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어떤 철학과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근대에 들어서는 시각적으로나마 산업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발전해왔다.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보이지 않는 정원은 결국 힘을 잃는다.
정원을 꾸밀 때 조금 더 화려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눈에 띄는 식물을 먼저 찾게 되는 건 당연한 선택이고 대부분의 선택은 서양의 또는 서양식 개량종으로 좁혀진다.
이런 정원의 본질 앞에 미처 준비되지 않은 토종 야생화들은 설 자리가 참 좁은데 정작 실상에서는 그렇게 적게 심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게 참 의외다.
토종 꽃들의 종착지.
- 익숙함, 향수, 토종에 대한 애정, 강한 생명력, 접근성 등등
꼭 고집하지 않아도 정원을 꾸미는 사람들은 이미
위와 같은 이유로 생각보다 토종 야생화들을 많이 심는 편이다.
내가 하다못해 소금도 미제를 쓰며 친구들 사이에서는 대놓고 사대주의자 행세를 하고 다니지만 사실 농장에 비슷한 이유로 수입종만큼의 토종 꽃들을 매년 심는다.
가장 슬픈 사실은
토종 야생화들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 눈에도
내가 그렇게 심어도 심어뒀던 꽃들은 물론, 거의 건드리지도 않은 강원도의 자연림이 서양 꽃 천지로 보일만큼
토종은 눈이 띄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화려한 서양 꽃들만 잔뜩 심어놓으면 당초에 뭐가 예쁜 건지 구분이 안 간다.
사람의 눈은 참 상대적이라 어느 한 가지를 돋보이게 하려면 비교대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 서양 꽃들이 더 예쁘고 화려해 보이려면 상대적으로 덜 돋보이는 토종 야생화가 꼭 들어가야 정원 전체가 힘을 얻는다.
이렇게나마 토종 야생화들이 자리를 찾는 건 씁쓸하면서도 정원의 본질을 생각해봤을 때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결과적 사대주의.
"저희 부모님이 공부 안 해도 괜찮다고 하셨어요."
가르친 이래로 쭉 학업에 관심 없던 학생을 다그치면서 들었던 이야기다.
"학생이 공부를 안 하는 게 뭐가 괜찮다는 거야?"
몇 달 전 일이었는데 난 지금도 모르겠다.
어떤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개인적으로 가장 듣기도 하기도 싫은 말들이 '원래 이런 걸 어떡해'
,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꼭 잘된 것만 좋은 게 아니야' 등이다.
그런 말들은 변화하려 꾸준히 노력할 때, 그 노력이 결과물을 뛰어넘는 에너지를 이미 가지고 있을 때 윤활유의 역할로 들어가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이런 말들이 결과물 그 자체가 돼버린다면 세상 모든 것이 멈춰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토종 목수국
토종 야생화는 정말 원래 모습 그대로 아름다울까?
- 그럴 수도 있겠지.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니까.
하지만 수천 년을 경쟁하며 이어온 정원 문화는 수없이 변화와 개량을 거듭하며 발전해온 꽃들만이 주역을 맡아 온 무대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색을 입히고 향을 채운 식물들로 거듭해서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서양 목수국
이 무대 위에 그저 환경에만 맞춰 살아온 들꽃들이 나란히 설 수 있을까?
들꽃을 그저 들꽃으로 남게 내버려 둔 게 과연 토종에 대한 소중함과 배려였을까?
과연 서양 꽃들을 그저 오랑캐 취급하듯 대할 자격이 있을까?
꽃이 본분을 포기하면 그게 꽃일까?
외래종의 위협에 대해 경각심을 일으키고 토종을 지키려는 글과 노력들은 많지만 토종이 외래종과 정당한 경쟁을 할 수 있게 힘을 실어준 행동은 과연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어느 분야에서나 문화적 사대주의는 존재하지만 정원문화에서 만큼은 사대주의 정도가 아니라 선택지에 토종 야생화 자체가 없어 보인다.
독일 은방울꽃
올해도 농장에는 새로운 품종들이 심어지고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의 토종 야생화들도 같은 공간에서 자란다.
내년 봄, 내 개인적인
애정이나 사람들의 취향
과는
상관없다.
사람들의 눈에 어떤 꽃이 들어올지는 심기도 전에 이미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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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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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서 야생화를 가꾸고 있습니다. 5.6헥타르의 숲 속에서 생기는 사람과 식물,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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