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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Dec 08. 2024

호락호락한 알바생이 되지 말자.

퇴사 후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


대표들 이야기만 나오면 유독 퉁명스러웠던 선임자는 그들의 인성을 진작에 알아본 걸까? 그래서 그렇게 "관심 없다" 거듭 피력했던 걸까? 


퇴근 전 회사에서 대표2와 내가 나눈 대화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핑퐁과도 같았다. 대표1의 중재 덕에 일단락 됐지만, 나는 집에 가는 동안에도 답답함이 안 풀려 머리의 열기가 식을 줄을 몰랐다. 그 망할 혼잣말어투로 끊임없이  내 기억력을 탓했던 대표2의 불통. 그리고 마치 내가 앞으로 3개월 간의 알바 업무에 온전한 책임이 있는 양 원망하던 그 고집스런 표정과 툴툴거리던 말투. 피곤한 와중에 번갈아가며 떠올리니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서 분노를 장전했다. 집에 들어가기도 전 큰 길가에서 걸음을 멈춘 뒤 와다다 쏟아냈다. 와중에도 어느 정도 말은 또 골라, 그렇게 장장 열 줄이 넘는 카톡 전송 완료. 


이대로 그만두게 되려나. 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건 나 역시 땡큐다. 애초 하루 두 시간만 하는 아르바이트가 내 살림살이에 큰 도움이 될 리도 없었다. 막판엔 대표2가 하도 툴툴거리며 보채는 바람에 포장의 오롯한 즐거움을 느낄 새도 만무하고. 


.... 그런데 30분이 지나도 답이 없다. 집에 들어가 대충 씻고 나와 사랑하는 반려묘 뒤치다꺼리도 마쳤는데 핸드폰이 불길할 만큼 조용하다. 


통쾌함이 있던 자리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대표2의 험악한 인상이 시간이 지날수록 내 기억 속에서 과장되기 시작했고, 거의 조폭 수준에까지 가자 잔뜩 초조해졌다. 렇다. 나는 억울한 상황을 못 견디는 성질머리를 지닌 분조장임과 동시에 겁은 심지어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쫄보였다....


하지만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역시.... 도보 거리 알바를 하지 않길 잘했어....'


조바심이 가라앉으려던 찰나, 대표2에게서 카톡이 왔다.




당연히도 나는 쉽게 대화창을 열지 못했다. 일터에서 만난, 친하지도 않은 남자의 반응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었고 하필 나는 S가 아닌 N이었다. 엇나간 내 핑퐁 플레이에 삔또가 상해 이번엔 강스파이크라도 날릴지 모른다. 아니면 그냥 탁구채를 집어던질 수도 있고. 


잠깐의 심호흡 뒤, 나는 대표2가 적어도 싸이코나 싸이코패스는 아니길 빌며 카톡창을 꾹 눌렀다. 그런데 내가 보낸 장문의 카톡에 맞먹는 큼지막한 회색 말풍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쫄보로서 상처받을 마음의 준비, 그리고 분조장으로서 반격할 마음의 준비를 마친 후, 카톡을 읽어 내려갔다. 



욕하며 화내는 카톡이었으면 차라리 덜 당황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실제 이야기했던 때완 달리 논리 정연하게 말도 잘하네. 나는 수긍하는 그의 태도에 안심이 되면서도, '아니 대체 이 사람은 왜 내가 파악이 안 되지?' 하는 답답함이 다시 일었다. 물론 저리 사과를 하자 바로 마음은 풀렸고. 한때 친구는 내게 <거울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나는 마치 그 가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표2에게 질세라 친절한 사과카톡을 보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3개월을 채울 생각은 단연코 없었다. 


오해가 풀린 건 풀린 거고. 그 '오전부터-출근시간 통보-대기조' 체질이 아닌 건, 여전히 아니다. 이는 바뀌지 않았고 대표2 역시 통관문제 때문에 여전히 같은 방식을 고수하려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으니 이해를 해야 하는 부분 같으면서도, 나는 그 생활을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 체질이 맞는 유연한 근무자가 또 있겠지 뭐. 


'다음 주, 무리면 다다음주 안에는 그만둬야지.' 


나는 그렇게 굳게 결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나의 얄궂은 포장 아르바이트. 사소한 다툼이 곱게 포장된 바로 그다음 날부터 낯선 모습의 대표2가 낯선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커피머신이었다. 내가 외투를 대충 걸치고 포장을 시작하려 노트북을 열자마자, 출근할 때 눈도 안 마주쳤던 그가 허겁지겁 다가왔다. 그리곤 애써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아 제가 어제 커피머신을 닦아놨거든요? 이제 그거 편하게 쓰시면 돼요."


갑자기?... 내가 그간 편의점 1+1 커피를 마셔재낄 때에도 저들만 비싼 테이크아웃 커피를 쪽쪽 마시고 있지 않았나. 당황한 나를 두고 자리로 돌아가려다 다시 내게 다가오는 대표2. 


"아 혹시 캡슐은 어떤 거 좋아하세요...?"


그리곤 입꼬리가 불균형하게 올라간, 어색한 미소 남발을 하기 시작한다. 


'아.. 저렇게(?) 웃는 사람이구나...'


두 번째로는 난데없는 칭찬. 그들이 그렇게 노래 부른 대로 휘뚜루마뚜루 빠르게 포장하고 귀가하는 길, 대표2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왔다. 


<오늘 진짜 빨라지셨더라고요...ㅎㅎ 감사합니다.> 


'당연하지 겁나 대충 했으니까...'


나는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속마음을 애써 삼켰다. 그리고 그 뒤에도 대표2는 계속해서 그 만의 스몰토크를 시도했다. 때때로 그의 질문과 칭찬은 당황을 지나 어느덧 황당함에 더 가까운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이를테면, 대표2가 했던, 며칠에 걸친 질문 세례들이 그랬다. 일한 지 거의 한 달은 됐는데 그는 뜬금없고 어이도 없는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성함도 안 물어봤네요. 성함이...?>


마치 그가 업무에 치여 그간 미뤄뒀던 예의를 뒤늦게 허겁지겁 차리고 있는 듯했다. 나는 황당함에 그저 말을 삼킬 수밖에. 


'.... 아냐 너 물어봤어. 두 번이나... 나도 두 번 대답했고.' 


<새로 사신 신발 예쁘더라고요~ ㅎㅎ>


'이거 신고 온 적 세 번 넘어...'


<아 자꾸 까먹네요, 나이가 몇이시라고 했죠?>


'아냐... 이건 한 번도 안 물어봤어... 뭐지 이 사람...?'




당시의 내가 이렇게 묻는다면 지금의 내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대표2는 잘 삐지고, 주변 눈치 보고, 한소리 하면 시무룩하는 소심 끝판왕이었다. 어쩌면 그 큼지막한 문신과 험상궂은 표정은 그의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추측까지 하자 나는 괜히 주제넘게 대표2가 짠해졌다. 모지리 같은 소통에 자주 애로사항과 오해가 커지기 일쑤지만, 세게 나가자 수구리는 강약약강의 태도가 더 꼴 보기 싫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애는 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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