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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Dec 05. 2024

참다 참다 터지고 보낸 장문의 카톡

퇴사 후,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

그렇게 매일 아침, 몇 시에 출근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대표2의 문자만을 기다렸다. 그중 어느 날은 기존 출근시간 한 시간 전에 '오늘은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급하게 머리를 말리고 있던 나는 짜증이 솟구쳤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이 알바, 결코 오래는 못 하겠다고.


당근 알바 특 짧고 굵은 채용공고는 해석의 여지가 많았다. '포장' 업무는 내가 생각했던 '물건을 깨끗한 투명 비닐 OPP포장지에 넣은 뒤 종이 포장지로 반듯하게 두르는 일'에 국한되지 않았다. 불량 물품 검수 및 오염 제거 작업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지만, 택배박스에 포장한 의류와 함께 넣는 쿠폰 제작까지 요구하자 '포장 업무'가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힘쓰는 일도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출퇴근 시간을 지나치게 넉넉히 적는 선임자를 보고 이를 '꼼수'라고 느꼈던 나는 이제야 그가 이해됐다. 꼼수가 아닌, 대표들의 무시와 갑질에도 버틸 수 있는 일종의 묘수였다. 




어느 정도 포장 일이 손에 익자 대표2의 혼잣말을 가장한 잔소리가 멈췄다.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고, 대표2는"이렇게 빨리 걸릴 거 아닌데...쓰읍..."라고 등 뒤에서 궁시렁거리는 대신 '이제 빨라지셨더라고요.' 라는 문자를 보내오기도 했다. 


하지만 불규칙적인 출근시간은 적응할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한 달가량 되었을 때 나는 대표2에게 알리기로 결심했다. 퇴근 직전, 나는 담타를 위해 테라스로 향하던 대표2를 불러 세웠다. 


"제가 출근 시간이 이렇게 매일 다를 줄은 몰랐거든요. 길게 일하긴 힘들 것 같아요."


그러자 대표2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하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네? 아니 제가 이 부분 여쭤봤을 땐 된다면서요."


"...? 그런 말 들은 적 없는데요?"


"두 시간 말고 더 일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그건 말씀하셨는데, 업무시간 뒤에 야근을 종종 하는 줄 알았지 출근 시간이 매일 유동적인 줄은 몰랐는데요... 그리고 전 날이 아닌 당일에 말씀해 주시는 건, 제가 매일 오전부터 기다리고 있어야 하니 무리예요."


"그것도 제가 면접 때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전 들은 적 없는데요?"


"말씀드렸더니 괜찮다고 하셔서 뽑은 건데."


"네? 아니 무슨..."


"그래서 뽑은 건데 갑자기 관두신다고 하시면 곤란하죠."


"아니, 당장 그만두겠다는 건 아니고요. 오래는 못 할 것 같다는 겁니다. 공고에도 안 적혀 있는 사항이었고..."


"그러니까 제가 분명 면접 때 말씀 드렸었잖아요."


망할 짧고 굵은 채용공고. 면접 때 말했다던 공고 외 업무 내용들을 내가 녹음이라도 했어야 하는 걸까? 대화는 그 뒤론 무한루프 었다. 


"아 분명히 말했는데."


"아니 전 들은 적 없다고요."


도르마무... 나와 대표2는 작업대 앞에 서서 얼굴이 빨개져 거의 씩씩대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치하고 무의미한 말다툼은 계속됐다. 20분가량 지나도 서로 굽힐 기색이 없자, 보다 못한 대표1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 역시 답답하고 짜증 난 표정으로 중재를 시작했다.



"제가 앉아서 들어보니 이야기에 진전이 없을 것 같아서요. 계속 서로 똑같은 말만 하던데. 그러니까 출근 시간이 언제인지 매일 기다리셔야 하는 게 힘든 거잖아요."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네."


"그럼 이제는 안 그러셔도 되고, 어쩌다 물량이 너무 많을 것 같으면 전 날 밤까진 말씀드릴게요. 그러면 된 거잖아요. 그쵸?"


"... 네."


"넵, 그럼 그렇게 할 테니 퇴근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상황은 일단락 되...는 듯했으나. 대표2는 굽히지 않았다. 대신 퇴근한 나에게 다시금 시비를 걸어왔다. <<분명 말했다>> 고. 그리고, <<그러니 아무리 짧아도 올해 까진 해주셔야 한다>>고. 


내가 기억력 나쁜 호구처럼 보였던 걸까? 그리고 말했다고 한들, 왜 내가 당연히 올해까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지. 그의 강압적인 말투에 답답함을 넘어 열불이 나기 시작했다. 부들거리고 있는데 대표2에게서 메시지 하나가 더 왔다.


<<올해까지 3달밖에 안 남았는데.>> 


... 그만둘 거다. 그만둘 건데, 3달 안 채우고 그만둘 거긴 한데. 이렇게 내 탓인 듯 욕만 먹으며 억울하게 그만두고 싶지도 않았다. 집 앞에 멈춰 서서 카톡을 보던 나는 그 자리에서 장문의 답장을 입력했다. 잠깐 대표2 팔에 그려져 있던 큼지막한 문신들이 떠올랐지만... 아 몰라. 열받으니까. 


[네 세 달 긴 것도 아니고 할 의향 있었는데요. 저 정말 면접 때 당일 시간 통보에 대해 들은 적이 없거든요. 그거 말씀하시면서 제가 관두게 되면 저 때문에 곤란하시다고 하셔서 저도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 달 일해야 한다고 못 박으시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면접공고에 당일통보를 정확히 적으신 게 아니고, 매우 짧은 면접이었고,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 오류인 것 같은데 제가 그런 식의 스케줄이 무리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제게 당일통보 시스템은 매일 다른 일을 하는 일용직 노동 같은 예상치 못한 시스템이라 들었으면 분명 기억했을 것 같거든요.]


와다다다 입력하고 전송. 나는 스스로를 토닥인 뒤 아주 홀가분하고 속 시원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갔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메시지 창에 들어가 '읽음 표시'를 확인했다. 하지만 30분이 지나서도, 대표2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보낸 메시지를 복기하기 시작했다.


'아, 일용직 어쭈구 말 너무 쎘나;;'


물론 메시지를 보낸 건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다만 기억 속 대표2의 용이 점점 더 험악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냥 그만두면 될 것을. 굳이 왜 따박따박 따졌을까. 선임자라면 이런 짓꺼리 안 했을텐데....솔직히 조금. 아주 조금은 후회하고 있던 차, 나는 핸드폰 진동이 울려 화들짝 놀랐다. 대표2로부터 온 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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