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
명품을 포장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르바이트 공고에선 '의류 및 잡화 포장 알바'라고만 명시되어 있었고, 나는 면접날이 돼서야 정확히 어떤 종류의 옷인지를 알게 됐다. 명. 품. 이라고 대표2가 말했다. 그리고 이름부터 자동적으로 부담이 가는 그 단어와 나는 딱히 친하지 않다.
하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학창시절 학교 위치 때문에 명품거리를 쭉 가로질러 통학을 했던지라, 비록 갖고 있진 않더라도 충분히 많은 브랜드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전세계의 폭넓은 명품 시장에 고작 내가 지나쳤던 건물 만큼의 브랜드가 전부일 리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대표2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알게 됐다.
내가 출근하기 전, 매일 대표들은 엑셀 파일에 그 날의 주문 목력을 기입해 놓는다. 그런데 인수인계 할 때부터 내가 여태 몰랐던 브랜드들이 눈에 띄었다. 그 중 하나가 'the row' 였다.
더 로우 가방의 디자인은 demure(포브스 선정 올해의 영단어) 그 자체였다. 사실 포장했던 많은 명품 굿즈들은 큼지막하게 로고플레이를 해 촌스러워 보이거나, 내 취향에 맞지 않아 돈이 아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더 로우는 달랐다. 깔끔하고 심플한 디자인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이런 명품이면 나도 살만 하네.'라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또다시. 순진한 생각이었다.
무사히 가방 검수를 마친 뒤, 이제 선임자에게 배운대로 가격표를 떼려던 참이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작업대 위에 택을 올려놨다. 그리고는 칼날을 옆으로 뉘여 바코드와 숫자에 열심히 스크래치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임자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제지하는 것이다. 그리곤 가방을 직접 가져가더니, 세상 신중하고 정성스럽게 가격표를 긁어냈다. 이전 가니 티셔츠를 포장할때 별 신경 안 쓰던 반응과는 확연히 달랐다. 선임자는 내게 조심하라며, 칼의 방향이 가발 밑판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며 일러줬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감흥없이 "네, 네"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다음 포장 단계로 넘어가려 했는데...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그제야 가격표의 숫자를 제대로 읽어보고 있었다.
이 가방이 500만원 대라고...?
이런 명품이면 나도 살만하긴 개뿔. 내 기준 소박한 모양새와는 달리 더 로우는 아주 요란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내 아르바이트 일급에 100배 이상이었다. 칼이 가방 쪽으로 향했다면…행여 흠집이라도 냈다면…아, 차라리 긁어도 내 팔뚝을 긁지, 상상하기도 싫다.
그리고 간혹 브랜드명이 안 적혀있거나(내가 로고를 보고 당연히 브랜드를 알 거라 추측), 혹은 다른 명칭으로 적혀 있을 때가 있었다. 후자의 경우는 Max Mara 였는데, 엑셀 파일에 도무지 해당 브랜드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없이 나는 적막을 깨고 조시스럽게 대표2를 불렀다. 그리고 파일이 잘못된 것 같다고 확신에 차 지적했다. 그러자 대표2는 물끄러미 주문 목록을 보더니...피식 웃고는, 셀 하나를 수정했다. Sportmax 에서, Max Mara로…
막스마라라는 브랜드는 안다. 하지만 스포트막스는... 사실 들어본 적도 없었다. 참. 단어 길이가 비슷하고만 대표2(인지 1인지)은 굳이 왜 스포트막스라 적었는지 모르겠다. 의류 택에도 분명 막스마라라고 적혀 있었는데.. 왜!
대표 1, 2의 자리 앞엔 사무용 책상 세 개가 더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의 주인은 명품 시장이 위축돼 사업이 힘들어지자 자진해서 회사를 떠난 직원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매번 놀랐다. 아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많은 명품들을 매일같이 주문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명품에 큰 관심이 없다. 명품을 좋아하는 대표들이 수차례 대충 포장하라 종용해도, 명품에 관심 없는 내가 이렇게 정성을 쏟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나는 어느 누군가 <30대 여성이라면 친구 결혼식에 들고 갈 명품백 하나 쯤은 있어야지> 라는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저만큼 돈을 쓸 여유가 있다면 인정. 하지만 저만큼 돈을 쓸 '여유'가 아닌 '애정'이 있다는 건, 생활비를 아끼고 아낀 뒤 새벽같이 오픈런을 달린다는 건, 나로선 생소한 일이었다. 어쩌면 근검절약 정신 충만한 부모님을 보고 자랐기 때문일까?
실제로 친구 결혼식 뒤풀이 때 다른 동창의 명품백을 봤냐며 열띤 대화를 나누는걸 들은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삐까뻔쩍한 가방과 옷차림을 스캔하며, 고급스럽게 꾸민 여성들은 그의 능력과 경제력을 가늠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겐 그런 대화를 나눌 친구가 없다. 그렇다보니 20대 때는 명품백에 대한 안좋은 편견이 박히기도 했다. 하지만 허무한 건, 명품이 많은 친구와 하나도 없는 내가 매달 저축하는 월급은 비슷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나는 다른 류의 탕진잼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었다...! 지금도 근검절약 하고 있을 부모님이 안다면 길게 탄식할만한 일이다. 그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였다. 그리고 나는 가방에 그 금액만큼의 가치를 두지 않았던 것 뿐이고. 생각해보면 다른 이가 목에 무심히 걸친 고가의 헤드폰을 스캔하며, 나 역시 그들의 능력과 경제력을 가늠했을 거다.
어쩌면 명품을 들지 않아도 위축되지 않는 이유는 검소한 부모님 때문이 아니고 언제든 원하는 헤드폰을 살 수 있다고 믿어서인지도 모른다. 현저히 ‘못’ 드는 상황이었다면, 그런데 주변 친구들은 너도 나도 갖고 있다면, 그 때에도 난 위축되지 않을 수 있을까? 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 없다. 갖고 싶은 것을 '안' 갖기로 '선택'한게 아닌, '어쩔 수 없이' '못' 가졌을 때 열망이 얼마나 커지는지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 첫사랑이 그랬고, 내 오랜 꿈 역시 그랬다.
물품의 금액대를 알게 되자 나는 포장에 더 정성과 시간을 쏟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점점 화가 났다. 빨리 하라고 재촉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표2가 내게 "쓰레기 같이 포장한다" 라고 말했던 건,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때부터 그의 언행에 대한 내 불만이 켜켜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나는 화를 잘 못 참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