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네가 준 부적
우래기!.... 가 아니고 민주야.
이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은 지는 한 달도 더 됐는데, 방금 너한테 톡이 왔다? 네가 한국에 도착했대. 아기와 함께. 건강하게 잘 귀국한 것 같아서 다행이야. 다름이 아니고, 내가 요 근래 계속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잖아.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만나서 얘기하면 나는 머쓱하고, 너는 어색해서 괜히 급하게 헤어질 것 같더라고? 그걸 방지하고자 여기에 글을 써. 모두가 보게 너의 실명으로 두둥, 하고 말야. 부담이면 말해줘. 수정할게. 너의 아가의 이름은 내가 자동적으로 지켰는데 너는 왠지 안 지켰네... 후후 웃으며 보고 있으리라 믿어. 어차피 몇 명 안 보거든.
본론으로 넘어가서.
나는 요즘 네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 민주 잘 지내? 타국에서 오롯이 너의 힘으로 가정과 커리어를 일궈가며, 그렇게 잘 지내고 있어? 그러니까 진짜로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너는 내색 않고 "응." 하겠지만 나는 가끔 주제넘게 네 걱정도 돼. 웃기지. 지나 잘할 것이지.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너는 웬만한 갈등은 이성적인 차분함으로 해결하고, 심지어 꼿꼿한 냉소로 튕겨내 버리곤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겐 지나치게 사려 깊잖아. 넘치게 따뜻해서 가끔은 네가 내 주변에서 가장 여린 친구가 아닐까 싶더라고. 하지만 좋은 일들이 너를 단단하게 지켰기를 빌어. 곧 만나니까 근황과 고민, 자랑거리는 실제로 전부 쏟아내 줘.
그리고 나는 어떻게 지내는지도 미리 예고편을 공유할게. 난 요즘 자주 긁혀. 긁히고 또 긁혀. 그런 일상을 보내고 있어. 얼마나 별거 아닌 일들에 긁히는지, 얼마 전엔 미용실에 갔는데 추억의 명곡이 흘러나왔다?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알지. 마침표와 쉼표가 저게 맞나 헷갈리는, 저 노래. 워낙 좋아했던지라 전주에서부터 감상에 젖어있었는데 말야. 노래 시작하자마자 대뜸 서지영한테 긁혀버렸어.
"울지 마, 이미 지난 일이야~~“
아니... 누가 지났대? 아직 안 지났다고. ‘지나갈 거야'라고 해야 되는 거 아냐? 그리고 힘든 거 안 지났으면 뭐, 그럼 울어도 되나? 그리고 이어 이지혜가 부르더라.
"그댈 추억 속에서~살게 할 건가요~"
추억이 됐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데? 위로도 형편없이 하는데 흑역사나 안 됐음 망정이지. 바라는 것도 참 많다… 하면서 미용실에서 속으로 혼자 발작했어. 이에 더해 누군가 내 불면증에 친절히 "나가서 좀 걸어봐. 나도 피곤할 때 걸으면 도움 되더라." 하고 말하면 속으로 '아~~~~ 나는 그냥 피곤한 거랑은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또 긁히고. 나 진짜 속 좁아졌지. 그래도 이게 솔직한 내 일상이야.
그래도 요즘은 많은 위로를 받고 있어. 감사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역시 또 긁힌 걸까? 나 이제 시기나 질투를 받을 때도 된 것 같은데 말야. 언제까지 응원만 받아야 하지, 하면서 울적해졌어. 그리고 오랜만에 친구가 만나자는 연락을 해오면 망설여져. 업데이트할 굿 뉴스도 없고, 무엇보다 자신이 없거든. 예쁜 마음과 걱정은 너무나 소중한데... 생각해 보면 스스로의 처지에 긁혔던 것 같아. 사실 김태희가 "예쁘다"는 칭찬을 언제 들어도 좋다고 한 것처럼, 나 역시 위로는 언제 들어도 좋긴 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받은 태초의 위로로 한참 거슬러 올라갔고, 그 끝에 네가 있었어. 후후.. 그렇게 실명 거론 편지가 시작된 것이란다...!
이 글 묶음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냥 불면증이었어. 어느덧 만성이 된 나의 불면증에 대해 적어보고 싶었어. 이런 지 얼마나 됐을까. 사실 수면장애와 함께한 기간을 굳이 숫자로 세면 스트레스받아서 덮어뒀었는데, 글을 쓰면서 어쩔 수 없이 햇수를 되짚어봤는데 생각보다 오래됐데. 손꼽아보니 열 손가락, 하고도 부족했어. 내 두 손에 네 한 손까지 필요한 15년.
15년 전, 난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 그 해의 어느 날은 아마 너의 편지를 읽고 있었을 거야.
학생 때 난 우울증이 지금보다 더 심했지. 불면증은 슬슬 나타날락 말락 하고 있었고. 그 초창기였음에도 너한테 어지간히 징징댔는지, 네가 나한테 편지를 줬어. 그리고 빈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빼곡하게, 작은 글씨로 위로를 가득 채웠어. 네가 한 말 중 하나가 아직까지 기억이 나.
'힘든 거 금방 끝날 거야. 지금 몸이 안 좋아 못 하고 있는, 너무나 하고 싶은 일들. 전부 다 할 수 있을 거야. 그런 날이 꼭꼭 올 거야. 넌 다 할 수 있어.'
어때? 샾의 ’네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보다 훨씬 나은 위로지.
그런데 민주야.
안타깝게도 아직도 그날이 오지 않았어. 그래서 속상해. 나도 이리 오래갈 줄 몰랐거든. 그래서 저 구절을 떠올릴 때면 괜히 염치가 없어져. 한참이 지나 바로 얼마 전, 기면증 증상을 알게 됐어. 여기서 또 한참이 지나야 다른 병명이 추가될 수도 있겠지. 그렇게 많은 것들을 내려놨어.
그래도 네가 해준 말은 부적처럼 항상 지니고 있어. 큰 힘이 됐어. 잠시 멀어졌을 때에도 저 편지가 생각났고, 그래서 너의 모든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었어. 망설이다 느지막이 네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신부 대기실에서 이제 사진 찍는 걸 마무리하려는 작가님에게 네가 정색하며 했던 말도 기억이 나. 이 사진까진!! 찍어달라고, 급하게 말했지. 이제야 말하지만 정말 무섭고 정말 귀여웠다.
너는 말뿐인 사람은 아니었어. 온 행동으로 위로가 되고 좋은 사람이었어. 막장을 달리던 20대, 술 취한 나를 해 뜰 무렵에 데리러 온 너와, 그리 귀찮게 했는데도 다음 날 말없이 순댓국을 포장해 우리 집 앞에 갖다 준 너를 나는 아직까지 기억해. 그리고 혼자 생각해. 너의 그런 정성 어린 마음들을 네 주변 모두가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더 나아가 오버하자면, 온 세상 사람들이 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그러려면 일단 내가 유명해져야겠지. 그래야 이 글이 읽힐 테니.
나는 너의 자랑이고 싶었어. 왜냐면 네가 나의 자랑이었거든. 어린 나이에 이룬 너의 엄청난 성취보다, 빼곡한 편지로 달래줬던 네 마음이 큰 자랑이었어. 억대 연봉을 번다는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을 자산이었어.
나도 언젠가 너에게 자랑이 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날이 올지 사실 자신 없긴 해.
그래도 너한테 자랑이 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에다가,
너를 아끼고, 응원하고, 사랑하는 내 마음이
너한테 다른 의미, 다른 형태의 자랑이 되길 욕심내볼게.
곧 보자 우래기!
늦은 생일파티를 열자구.
ps. 넌 알았어? 우리의 어반자카파가 이만큼이나 유명한 가수가 될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