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존재만으로 충분하긴 해
어제 나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에게 기면증 약이 더 이상 효과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약을 먹고도 깨어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져 두 시간 남짓이라고. 이틀은 밤샌 것 같은 컨디션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선생님은 너무 서두르지 말라며, 기면증을 발견한 게 어디냐며 나를 독려했다. 하지만 잔뜩 기운이 빠진 나는 선생님의 눈을 애써 피했다.
평소에 난 언제나 웃으며 최대한 정확하고 짧게 내 상태를 전달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나아질 의지를 말똥한 눈으로 적극 내비쳤다. 하지만 기대하던 치료가 어그러지고 실망이 덮치면 이 대외적인 가면을 쓸 힘이 전부 사라진다. 어느 병원에서든, 상대가 누구든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저 의자 끄트머리쯤을 응시하며 웅얼거릴 뿐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 네, 이번엔 일주일만 처방해 볼게요.
그리고 그렇게 실망할 필요 없어요.
기면증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발전인데.
병원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 네... 감사합니다.
평소처럼 짧은 진료를 받고 원장실을 나서려다, 무슨 생각에선지 나는 말을 이었다.
- 선생님, 그런데요.
저는 이게 좀. 오래 됐잖아요.
그러자 선생님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수긍했다.
- 맞아요...
그렇긴 해도 새 질병을 발견했고,
그러니 나아지고 있는 거예요.
너무 서두를 필요 없어요.
실망하고 자책할 필요도 없어요.
지금 얼마나 잘하고 있는데.
이 상태로 이런 일과를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예요. 스스로에게 칭찬을 좀 해줘요.
우리나라 부모들은 7-80점을 받으면
100점을 못 받았다고 혼내는데,
거기서부터 잘못된 거야.
오늘은 꼭 본인에게 칭찬을 해주면서
하루를 보내요.
언제나 시간에 쫓기는 듯 보였던 선생님이 그날따라 한참 나를 위로했다. 큼지막한 위로였다. 나는 모든 말들을 기억하고 싶어 핸드폰에 이를 받아 적었다. 하지만 그중 눈물 버튼은 사실 짧고 간단했다. "맞아요." 세 글자. 선생님은 진심이 느껴지는 말투로 수긍의 세 글자를 말했고 그걸로 이미 충분했다.
진심은 어떻게든 전달된다.
한때 나는 "힘들었어, 억울하겠어, 속상하겠어. 어떻게 버텼어"와 같은 이해, 수긍, 그리고 연민의 말을 들을 때 유독 상대의 진심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얼마 전, 내가 언제나 질색하던 '전도'에서도 나는 친구의 진심을 발견했다.
어쩌면 '전도에서조차'가 아니라, '전도여서' 였을 수도 있겠다. 질병이 만성화되고 현존하는 모든 치료법이 다 소용없어지면 초월적인 존재를 찾게 되니까. 내가 '내림굿'을 망상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면 엄청난 위로의 글을 써준 친구 '색시' 역시 독실한 신자였다.
하지만 그 외에도 진심이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는 말들이 있다. 대상이 나는 아니지만 김승일의 <1월의 책> 시가 그랬고, 언니의 상담선생님이 두 가지 색상의 펜을 섞어가며 써 줬던 카드가 그랬으며, 2년의 연애를 끝내던 날 “네가 잠 못 자는 사람치고 착하다고 했던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가.“ 라고 했던 전남자친구의 말 역시 그랬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면 나는 그 진심을 한껏 부여잡는다. 그리고 주눅 들어 땅으로 꺼져있는 내 자존감에 모래성처럼 쌓아 모은다. 스스로 쓰레기 같을 때 들었던 따뜻한 말 한마디를 우린 절대 잊을 수 없다. 모두가 고마웠고, 고맙고, 앞으로도 되새김질하며 평생 고맙겠지.
나는 가장 불안할 상황에서도 그 누구의 위로 없이 밤을 무사히 지나는 꿈을 꾼다. 하지만 정말 홀로 강해질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위로의 조각들이 늘 필요하다.
이런 순간을 살려고 나머지 순간들을 버텨 오는 거지 싶은 그날을 기다리며, 타인의 진심이 담긴 모래들을 모으고, 또 모으고. 부족하다면 내가 스스로 말해주기도 하며, 더욱더 단단하게 모래성을 다독이고.
그렇게 버티고 있다.
나는 종교가 없음에도 "기도할게"를 대체할만한, 그만큼 엄숙하고 진심 어린 위로를 여전히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