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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Feb 05. 2019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초콜릿과 술

2016년 6월 30일 목요일


나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 마시지는 않는다. 어떤 술은 좋아하지만, 어떤 술은 입에도 대기 싫다. 즉, 술을 "편식"한다. 명백하게 싫어하는 쪽은 소주이다. 특유의 알코올램프 향도 역하지만, 역한 주제에 은근히 당도 많아 끝 맛이 달아 깔끔하지도 않다. (향에 대한) 비슷한 이유로 사케, 보드카도 좋아하지 않는다. 칵테일은 대개 다 좋아하지만 마티니만큼은 아직도 잘 마시지 못한다.

바(Bar)를 알기 전까지 좋아하는 주종은 기껏해야 맥주 하나 정도였다. 사실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하다. 중립 정도랄까. 맥주 특유의 청량한 느낌은 정말 좋아하지만, 배가 불러서 많이 마시지는 못하여 500ml가 내 주량의 한계였다.

그러나 내수동에 위치한 이 작은 가게는 내가 아는 술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위스키'의 위도 몰랐던 내가, (물론 지금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 정도는 생겼으니까.




그날은 기분이 온통 엉망이 된 날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 훈계를 들었다. 억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짧지 않은 회사생활 끝에 얻은 교훈은, 이럴 때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더 큰 수난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애환을 속으로 꾹 눌러 삭혔다. 그러고 저녁이 되었다.

오랜 친구 D가 그날 만날 약속 장소를 알려줬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무엇을 파는 곳인지 알지 못했다. 테이스팅 코스를 예약해 두었다고 하여 가게 이름을 보고 ‘초콜릿을 먹을 수 있겠구나’라고 추측한 게 전부였다.

택시를 타고 내수동에 도착했다. 경복궁 역과 광화문 역 사이, 조용한 주거지에 자리 잡은 작고 아늑한 가게였다.

Seoul, June 2016

테이스팅 코스는 아래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1. 술을 넣은 아이스크림
2. 위스키나 리큐르를 넣은 봉봉
3. 술을 넣은 생초콜릿과 레몬 파베
4. 술을 넣은 핫초코


그날 저녁, 초콜릿과 술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조합을 경험했다. 술을 넣은 아이스크림(리큐르 아이스크림)은 술을 좋아하는 술꾼, 달달 구리를 좋아하는 디저트 마니아 모두를 만족시킨다. 일반적으로 보드카나 진 등의 화이트 스피릿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부어 마시고, 위스키나 디사론노 등 리큐르는 초콜릿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는다.

위스키 봉봉은 두 종류인데 하나는 위스키 입문자를 위한 글렌모렌지 등 상대적으로 스위트 한 타입, 다른 하나는 라가불린, 라프로익, 아드벡 등 스파이시한 타입이다. 가끔 달달한 종류로 위스키가 아닌 칼바도스 봉봉이 라인업 되어 있기도 하다. (나는 칼바도스 봉봉을 가장 좋아했다)

Seoul, June 2016

압생트와 수정방이 들어간 리큐르 파베와 레몬이 들어간 생초콜릿이 나왔다. 처음 보는 신기한 경험에 눈과 입이 즐거웠다.

사장님은 집과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다.
 "전 경기도에 살고요. 회사는 곧 이사 가요. 이사 후 사무실은 강남이라 아쉽게도 거리가 멀어지네요."

이 얘기를 할 때쯤엔 내가 수 차례 더 이곳을 방문할 것을 알지 못했다.

Seoul, June 2016

글렌모렌지 오리지널이 들어간 위스키 봉봉을 씹어 삼키며 싱글몰트를 처음으로 만났다. 동그란 봉봉을 깨물어 톡 하고 터지는 순간 달콤하면서도 위스키 특유의 쌉쌀함이 느껴졌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D가 물었다.
 "여기 어때? 괜찮은 것 같아?"

나는 기대 이상이라고 대답했다. 덕분에 힘들고 상처 입었던 내 마음이 치유되었다고.

 "그럼 다음에 우리 바에도 한번 가보자. 나 예전에 이태원에 있는 바 가봤는데, 좋더라고. 나이 한 살 더 먹기 전에 연말에 한 번 어때?"

"그래, 좋아. 송년회는 거기서 하자.”


명실상부한 나의 0번째 바가 있는 내수동. 이곳을 만나기 전까지 내게 위스키란, 회식 2차, 3차에 끌려가 편의점에서 파는 값싼 위스키에 소주나 맥주를 섞어 마시는 맛없고 독한 술이었다. 글렌모렌지 오리지널이 들어간 위스키 봉봉을 씹어 삼키며, 싱글몰트를 처음으로 만났다. 동그란 봉봉을 깨물어 톡 하고 터지는 순간 달콤하면서도 위스키 특유의 쌉싸르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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