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는 즐거움
2016년 7월 1일 금요일
이른 여름, 운동화를 신지 않아 퇴근길 걷기 운동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찍 퇴근했기에 집에 도착한 뒤 여유 있게 운동할 수 있었다.
이미 해가 졌기에 멀리 갈 수는 없었고, 근처의 호수공원을 두 바퀴 돌았다. 호수를 두 바퀴 도니 40분 정도 걸렸다.
사실 호수공원의 경관은 꽤 멋지다. 호수를 걷기 시작했을 때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과, 그 하늘을 떠받치는 것처럼 보이는 소나무는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해가 완전히 져서 주위가 보이지 않고, 오직 가로등 불빛과 운동하는 사람들만이 남은 그때, 나에게 남은 것은 운동 시간뿐이었다. 귀에는 음악만 맴돌았고, 다리 근육의 움직임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기계가 된 것처럼.
운동을 마치고 카페에서 <느리게 걷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아무래도 신체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조건인지라 꾸준히 보정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평소 차 안에서나 도심을 이동할 때 듣는 것과 똑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혹은 앞에 놓인 텔레비전을 쳐다보면서 지칠 줄 모르고 러닝 매트 위를 걷고는 한다. 그런 게 정작 그런 활동은 걷기를 몰아내는 퇴마식이자 지극히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치거나 발견할 수 있는 모험을 애써 무릅쓰지 않고 손쉽게 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이다. (8p)
칼로리 소모, 그 자체가 목적인 러닝머신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 퇴근길 걷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단순히 시간을 채우기 위한 걷기도 러닝머신과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걷기는 러닝머신과는 달라야 한다. 모네가 같은 장소의 수련을 시간과 빛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느끼고 묘사했듯, 항상 같은 장소를 걷더라도 매번 다른 느낌과 인상을 받았던 경험이 소중하다. 걷는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하늘색과 노을, 다른 빛깔의 강물 색을 보여주었던 한강. 일주일만 지나도 다른 꽃을 피우는 아치울 마을 가는 길. 그 찰나의 순간에 작은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누가 그러더라. 뜸한 큰 행복보다, 작은 행복이 자주 찾아오는 게 훨씬 즐겁게 살아가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