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블루보틀
성수동에서 저녁 약속이 있어서 뚝섬역에 내렸다. D는 성수동 ‘윤경’에 있었다. 마침 그 근처에 블루보틀 성수점이 있길래 뜨는 시간을 보내러 들어가 봤다.
처음 오픈했을 때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 잔을 살 수 있다고 기사에 나왔었는데 이젠 꽤 여유가 있다. 그래도 편안한 테이블 자리는 만석이고, 스탠드나 벤치 같은 좌석에만 앉을 수 있다.
심지어 이런 벽돌을 막 쌓아놓은 듯한 곳에도 기대어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있었다. 와이파이도 없고, 좌석도 불편한 이곳은 “불편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뉴욕이나 도쿄의 블루보틀에서는 그런 점을 느끼지 못했는데, 유독 이 매장에서는 ‘인테리어의 도도함’이 강하게 느껴진다.
앤트러사이트가 떠오르는 디저트 디스플레이. 작은 다크 초콜릿이 8,600원이라니 너무 비싸다. 초콜릿에 금이라도 두른 걸까.
술이 들어간 커피 칵테일 메뉴도 있었다. 분명 엄청 비싸겠지.
보드카와 깔루아가 들어가나 보다. 뭔가 어마어마하게 달 것 같은 불길한 느낌. 그래도 궁금하니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 싶다.
커피에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놀라 플로트’도 7,200원이나 하는데 술이 들어갔으니 8-9,000원은 하지 않을까.
고민 끝에 콜드 브루를 선택했다. 우유가 들어간 ‘뉴 올리언스’는 보증된 맛이지만, 다른 곳에서도 마셔봤으므로 안 먹어본 걸 먹기로 했다. 바로 ‘콜드 브루’였다.
“어떤 중국집의 볶음밥이 맛있으면 모든 요리가 다 맛있다”라는 말이 있다. ‘미스터 초밥왕’에서도 중식당의 볶음밥 격인 ‘계란초밥’이 등장한다. 계란초밥이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기 때문에, 계란초밥이 맛있으면 다른 모든 초밥이 맛있을 거라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읽은 후 ‘계란초밥’을 종목마다 꼭 시켜봐야 하는 메뉴와 동의어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맥주집에선 감자튀김, 칵테일바에선 진 피즈, 카페에선 콜드 브루가 되었다.
그래서 메뉴에 콜드 브루가 있는 카페에서는 첫 메뉴로 콜드 브루를 시키게 되는 것 같다.
5,800원짜리 콜드 브루를 마셔본 소감은 “스타벅스 콜드 브루가 훨씬 맛있다”였다. 블루보틀에서는 아이스 블렌드 커피나 우유가 들어간 뉴 올리언스를 마시는 게 나을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1년 전 미나미 아오야마의 블루보틀 카페에서 기념으로 사간 콜드 브루 볼드 캔커피도 나무뿌리를 씹어먹는 듯한 묵직한 쓴맛으로 겨우 다 마셨던 게 떠올랐다. 그땐 ‘볼드’가 아니라 가벼운 ‘라이트’ 맛을 샀어야 한다고 후회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라이트를 마셨어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블루 보틀에서는 ‘뉴 올리언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