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동 앤트러사이트
얼마 전에 곽재혁 작가님의 작가님에게도 특별히 글이 잘 써지는 장소가 있으신가요? 라는 글을 읽었다. 작가님의 글이 잘 써지는 장소는 강남역 교보문고 폴 바셋이었다. 나에게도, 글이 잘 써지는 장소는 카페이다.
글뿐만 아니라 책도 카페에서 읽는 편이 잘 읽힌다. 이상하게 집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돈을 아끼겠다고 집에 있다가 침대에 누워서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를 보며 빈둥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대개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쉬고 싶다는 마음을 넘어서기 때문에 집순이가 되지 않고, 카페를 떠도는 유목민이 된다.
나는 서울시민이 아니라 서울로 출퇴근만 하는 서울 생활자라서, 출근을 하지 않는 휴일에는 서울에서 약속이 없으면 굳이 서울에 나가지 않고 동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앉은자리가 불편하면 글을 쓰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단골 카페가 되기 위한 제 1조건은 ‘의자와 테이블의 편안함’이었다. 주변에 할리스, 이디야 등 몇몇의 카페가 있었지만 편안한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롤링핀에 가장 많이 갔다.
그러나 롤링핀의 가장 큰 단점은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학부형 모임이나 가족 단위 모임이 많아 시끌벅적해, 최근 들어 글을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인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은 특히 도깨비 시장 같았다.
커피 맛은 평범하나, 빵이 맛있고 종류가 다양한 게 장점이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카페에 갈 때마다 빵을 먹게 되어 체중 조절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근처라 별로 걷지도 않는 거리인데, 갈 때마다 빵을 먹게 되니 살이 찌기 쉬운 곳이었다.
한편, 코로나 19 유행 이후로 올해 들어 해외여행을 못하게 되니 휴일마다 서울을 마치 여행하듯 돌아다니게 되었다. 특히 올해 들어 망원동과 상수동을 비롯한 마포구에 자주 갔다. 집이랑 멀어서 예전 같으면 갈 생각조차 안 했던 동네였는데 요즘엔 여행 가는 셈 치고 기꺼이 나들이 간다. 거리는 멀지만 신기하게도 한 번도 서서 간 적이 없고 편하게 앉아 갔다. 6호선도, 심지어 2호선도 모두 한산했다.
망원역의 서쪽은 망원동, 동쪽은 서교동이었는데 서교동은 문학동네라 할만했다. 창비 서교빌딩 1층에 있는 카페 창비와 당인리 책 발전소 등의 북카페가 있다. 아이리시 커피가 칵테일바보다 맛있는 퀜치 커피도 사장님의 북 셀렉션이 있어 책을 읽기에 좋은 곳이었다. 퀜치 커피는 의자도 편안하고 조용하며 커피까지 맛있어 글쓰기에 제격이었으나 단 한 가지 흠은 화장실이었다.
그러던 중 창비 서교빌딩 옆의 앤트러사이트 서교점을 방문하고, 그곳은 단번에 나의 인생 카페가 되어버렸다. 처음 앤트러사이트를 알게 된 건 2년 전의 앤트러사이트 한남점을 방문했을 때였다.
디저트는 맛있다고 생각했으나, 함께 마신 커피 ‘공기와 꿈’ 원두는 산미가 강해 나와 맞지 않았고 당시 유행하던 노출 콘크리트 인테리어와 불편한 의자 때문에 앤트러사이트 한남점에 다시 방문할 의향은 없었다.
그러나 서교점은 1층과 2층에 바 형식의 편안한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자리가 안락할 뿐만 아니라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정원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바 자리에는 책을 읽거나 랩탑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앉아있어서 시끄럽지 않고 고요한 분위기였다. 특히 2층의 바 자리에선 카페 직원분들이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퀜치 커피나 이촌동의 헬 카페 스피리터스처럼 낮술이 가능하기까지 했다. 하이랜드파크 12년, 발베니 더블우드, 글렌모렌지 라산타 등 3종의 위스키를 잔술로 판매한다.
‘인생 카페’란 단어는 ‘나에게 완벽한 카페의 조건’을 함축하고 있다. 그동안 어떤 카페가 나에게 완벽한 카페인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완벽한 카페의 조건
1. 의자와 테이블이 편안할 것
2. 화장실이 깨끗하고 안전할 것 (카페 내의 화장실이 좋고, 남녀 분리가 좋다)
3. 조용할 것 (손님의 분위기)
여기에 플러스로 술까지 마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인데, 앤트러사이트 서교점은 이 모든 조건을 갖춘 완벽한 곳이었다.
집에서 멀다는 유일한 단점을 제외하면, 내 인생의 완벽한 카페로 남을 앤트러사이트 서교점. 오후 서너 시쯤 카페를 방문해, 사놓고 읽지 못했던 소설도 다 읽고 밀린 글도 몇 편 쓴 후 뿌듯한 마음으로 카페를 나오니, 낮에 볼 때와는 또 다른 멋진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