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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Aug 28. 2020

궁예의 이름

궁예는 궁예다

6월 17일 수요일


언젠가부터 혹시 고양이들이 있는지 궁금해서 계곡에 들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계곡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크고 넓적한 바위에 앉아있는 호랑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낮에는 동공이 작아져서 다소 맹수 같은 인상이지만, 밤에는 동공이 커져서 귀염상으로 변한다.

고개를 내려 계곡 바닥 쪽을 보니, 궁예​가 있었다. 며칠 전에는 계곡의 높은 지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서열에서 밀렸는지 낮은 곳에 있었다.

궁예는 다른 고양이들이 비해 눈이 작은 편으로, 종종 눈이 수박씨 같다고 놀림을 받지만 마스크가 매력적이다. 이날도 계곡에 앉아있는 자태가 품위 있었다.

그때는 아직 궁예의 이름이 ‘궁예’가 되기 전이었다. 한쪽 눈에만 검은 점이 있는 얼굴을 보고 바로 궁예가 연상되긴 했으나, 좀 더 일반적인 이름을 지어줘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예를 들면, 점순이나 바둑이 같은 이름이었다. 달마시안에서 따온 ‘달마’라는 이름도 후보였으나, 달마대사 같아서 사장되었다.

그러나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다른 어떠한 이름들보다 궁예가 어울렸다. 궁예만큼 직관적인 이름은 없었다. 그래서 궁예의 이름은 ‘궁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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