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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Nov 10. 2020

고양이는 요물이라더니

아차산의 얼굴

6 27 토요일


아침 아홉 시, 호랑이가 부뚜막에 출근했다. 초록빛 풀 사이로 키가 큰 하얀 꽃이 피어 있었고, 풀잎 사이로 보이는 호랑이의 모습은 마치 소풍 나온 것처럼 보였다.

다른 곳을 바라보던 호랑이와 렌즈를 사이에 두고 눈이 마주쳤다.

매서운 눈동자는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그것처럼 보였지만, 어쩌면 카메라의 피사체가 된 모델처럼 보이기도 했다. 수동적으로 사진에 찍히는 다른 모델과는 달리, 거꾸로 자신을 촬영하는 이를 빨아들이는 듯했다. 어머니는 호랑이가 좋게 말하면 연예인의 끼가, 나쁘게 말하면 관종의 기운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사진을 찍으려 하면 경계하거나 도망가는 불한당​과는 달리, 자신에게 보이는 관심을 즐기는 듯했다.

흡입력 있는 눈동자에 흠칫 놀라면, 강약 조절을 하는 듯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피우기도 한다.

그야말로 인간을 조련하는데 능한, 보통이 아닌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요물이라던 옛말이 떠올랐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가 바위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지게 만들기도 하고​, 사진 몇 번 찍었을 뿐인데 자기의 팬으로 만들어버린다.

오후에 또 고양이가 있는지 궁금해서 밖으로 나갔더니, 부뚜막 풀숲 나뭇가지 사이로 밖을 바라보는 호랑이와 눈이 마주쳤다.

호랑이 옆에는 덕이가 있었다. 이때는 둘 다 암컷인 줄 알았기 때문에 ‘호랑이 모녀’를 발견했다고 가족들에게 얘기했다.

호랑이를 어미 고양이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는 게, 이 고양이는 ‘호랑이’를 닮은 잘생긴 외모였지만 한편으로는 청순한 암냥이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중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사진은 요염했고, 또 다른 사진은 청초했으며, 대개의 사진들은 용맹한 맹수 같이 멋졌다. 그는 천의 얼굴을 가진 고양이로, 아차산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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