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 칵테일 위크
2016년 8월 20일 토요일
대학교 새내기 때,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며 '메뚜기'란 말을 처음 들었다. 시험공부 기간에는 자리를 맡기가 어렵다. 미처 자리를 맡지 못한 학생들은 책상의 주인이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식사를 하러 가서 자리를 비울 틈을 노려 책상을 잠시 사용한다. 그러다가 원래의 주인이 나타나면 또 다른 빈자리로 옮기는 것이다. 이런 행태를 '메뚜기'라 불렀다.
마치 메뚜기의 뜀박질을 연상시키는 '호핑'이란 단어를 처음 들은 건, 6월의 마지막 날 내수동의 작은 가게에서였다.
친구와 종로구 내수동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택시를 탔더니 금세 도착해버렸다. 가게가 넓은 편은 아니라, 혼자 처음으로 방문하기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가게 내부엔 먼저 온 남자 손님이 있었다. 딱 봐도 단골인 듯싶었다. 그는 그곳에 '잠시' 들렀다. 위스키 봉봉을 테이크 아웃하고 사장님과 몇 마디 나누더니 자리를 떴다. 그는 '호핑' 중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를 하루에 몇 차례 옮겨 다니는 걸 호핑이라고 했다. 마치 메뚜기가 자리를 옮기듯이, 한 곳에서 한두 잔 홀짝 마시고 유유히 자리를 뜬다.
첫 호핑은 한남동이었다. 더위가 한풀 꺾이기 직전, 한남과 이태원 일대에서는 칵테일 위크가 열렸다.
어느 토요일, 나와 D는 홍대입구역 근방의 이자까야에서 열리던 위스키 동호회 모임에 참석했다. D는 달모어를 가져왔다. 거진 16~17병이 모였다. 한 잔씩만 시음해도 엄청난 양이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왜 몇몇 사람들이 시음 전에 여명을 마시는지 깨달았다. '너무 양이 많은 게 아닌가' 깨달은 시점부터는 거의 마시지 않았다. 좀 취했다 싶은 시점부터는 사실 서로 다른 위스키의 종류를 전혀 구별할 수 없었다. 그 날, 나는 술이 아니라 '바'라는 공간을 좋아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자까야에서 시음회가 끝난 후 다음 장소로 옮겼지만, 우리는 모임에 참석하기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칵테일 위크로 향했다. 택시는 강변북로를 달렸다.
사실 처음부터 호핑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당시 역삼동에서 영업왕 K 씨가 애사심을 담아 추천했던 한남동의 분점만 가볼 생각이었다.
미스 플라밍고, 퍼퓸 샤워, 너티 트리까지 총 3종의 칵테일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미스 플라밍고라는 칵테일은 플라밍고 풍선과 함께 서빙되기 때문에 바는 형광빛 플라밍고들로 가득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바와 잘 어울렸다.
다음 달에 도쿄 긴자로 바 투어를 떠난다고 하자, 종이 코스터 뒷면에 긴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칵테일을 알려주셨다. 진 베이스에 자몽이 들어가는 '더비'라는 이름의 칵테일이었다.
두 잔 정도 마시고 자리를 뜨려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칵테일 위크'라는 행사가 아니었으면 조용히 집으로 향했을지도 모르겠다. 행사용 도장을 모아 공짜 칵테일을 받겠다는 일념 하에 인근의 다른 바로 향했다.
영업시간이 5시까지라 다른 가게의 바텐더들이 퇴근 후 한잔하러 들린다는 곳이었다.
이곳은 한 잔에 5,000원이라는 위클리 위스키가 유명한데, 우리는 칵테일 위크 도장을 찍기 위해 칵테일을 각 한 잔씩 주문했다. 위스키 모임에서 위스키를 질릴 만큼 마셨기에 위스키를 쳐다보기조차 싫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진, 보드카에 릴렛이 들어간다는 베스퍼 마티니를 주문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 카지노 로열>에서 주문한 레시피를 따른 것이다. 베스퍼는 카지노 로열의 본드걸, 에바 그린의 극 중 이름이다. 좀 낭만적인 이야기라, 맛 또한 낭만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매우 쓰고 맛없었다.
약간은 서재 분위기가 나는 바 자리에 당분간 앉아있다가, 각자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택시는 다시 한번 강변북로를 달렸다. 열린 창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다. 더위가 가신 밤공기, 도시의 별빛 같던 가로등들. 약간의 취기 때문에 강변북로는 더 아름다워 보였다.
지금도 처음으로 호핑을 했던 그날을 떠올리면 아름다웠던 강변북로의 드라이브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