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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Jan 06. 2021

불안

정년퇴직을 몇 해 앞두니

  미국 대통령 당선자 바이든은 위기 때마다 “한 인간의 묘비에 적힐 평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결정된다”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진 적이 별로 없는 인물이지만 이 한마디는 꽤 멋지다. 이미 내가 知天命을 넘어 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마지막 전투에 임하려면 아직 갈 길이 창창하다는 생각에 제법 위로가 되는 말이다. 실제 그는 머잖아 팔순을 바라봄에도 당당하게 대통령이 되어 향후 4년간, 아니 어쩌면 팔 년간이나 세계인의 리더로 살아갈 것이다. 그와 비교해보면 이제 겨우 환갑 언저리에 도달한 나로선 마지막 전투는 고사하고 아직도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하는 일도 많이 남았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주변에서 누가 잘됐다는 소릴 들으면 내 가슴은 늘 뻥 뚫린 듯 서늘하다. 특별히 잘못된 삶을 산 것도 아닌데 내 또래 누군가가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거나 앞으로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을 접할 때면 허전해진다. 그 허전함의 뿌리가 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저 사람들이 저러고 사는 동안 난 뭘 했을까? 난 지금 왜 이러고 있나 자괴감이 솟구친다. 언제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 못 끼웠을까? 황지우 시인의 말처럼 “이번 생을 영 글러먹은” 건 아닐까? 다시 뭔가 해보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뭔가 해볼 자신감과 능력은 있기나 할까? 새벽녘 지하철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깰 때마다, 늦은 밤 잠자리에서 마른 눈을 껌뻑일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맴도는 질문들로 정신이 말똥말하다.


  이러니 보다도 젊은 알랭 드 보통이 <불안>에서 일갈한 통찰에 후련하면서도 섬뜩해진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12쪽)




  어떻게 되겠지 하며 호기를 부리던 오만도 정년퇴직이 성큼성큼 다가오니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더구나 주변 동료직원들의 명예퇴직과 재취업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이러다 나는 막차마저 놓치는 것은 아닐까 싶은 불안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대접받으며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재취업도 힘든데 좀 더 버티는 게 어떨까? 이렇게 저렇게 계산기를 두드려 보지만, 나중엔 이도 저도 못하고 꼴만 우습게 되리란 걱정도 든다.



    

  어제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 보았다.

   

  “나도 명퇴를 심각히 생각해 볼까?”

  “갑자기 왜?”

  “남은 재직기간 동안의 봉급을 한꺼번에 다 받고 나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명퇴금이 그 정도 까진 안될 걸? 그리고 같은 돈이라도 다달이 나누어 받으며 정년까지 다니는 게 낫지. 괜히 목돈 생기면 어디다 투자하고 싶은 유혹이 생겨 다 날리는 사람도 많던데”

  “난 원래 재테크에 관심도 없는 사람인 거 알 텐데.”

  “그래도 매달 조금씩 받아서 사는 게 더 이익이라고 재테크 전문가들이 말하던데”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이고 우린 우리의 방식대로 살면 되지 어디 정답이 있나?”

  “그렇긴 해도 전문가들 얘기니까 깊이 생각해 봐야지”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명퇴금 받아서 내 통장에 넣어 뒀다 매달 받던 월급만큼 내가 보내줄게”

  “됐네 이 사람아”


  말을 꺼낸 나도 참 순진하고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긴 매 한 가지다. 그게 말이 쉽지 마음먹은 대로 되겠나. 매달 받는 봉급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매일 어딘가 나갈 데가 있다는 것, 규칙적으로 생활한다는 것, 뭔가 매일 할 일이 있다는 것,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도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아내의 의중을 난들 왜 모르겠나? 정년이 다가오니 세상 물정에 어두운 좀생이가 나름대로 앞일을 고심한다는 게 이 모양이다.



 

  나는 말이 가장이지 실은 아내가 집안의 대소사를 다 건사하며 살아왔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냥 아무 탈 없이 오랫동안 한 직장에 다니며 가계에 부담을 주지 않은 점, 그것 말고는 사실 내세울 게 없다. 집 한 칸이라도 장만한 일, 애들의 진로와 교육비 감당,  양가 집안의 대소사는 대부분 아내가 챙겨 왔다. 나는 그저 아내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내가 적극 나서거나 간섭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내 의견을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말을 한다 해도 참고 사항일 뿐 대체로 반영이 안 된다는 점을 이미 신혼 초기부터 체득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보다 현실감각이 월등히 뛰어난 아내에겐 이론적이고 낭만적인 내 견해가 씨알이 먹힐 리도 만무하거니와 세상모르는 철부지 소리쯤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가끔 내가 우리 가정사를 주도했더라면 우리 가정이 어찌 됐을까 생각해보는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아찔한 장면이 연상된다. 그럴 때마다 유순한 외모와는 달리 현실감이 뛰어나고 생활력이 강한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는 게 내 삶에서 잘한 일 중의 첫 번째라 꼽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반대로 나 같은 지질한 남자가 꽤 괜찮은 여자의 남편으로 간택되었다는 게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어쨌거나 아내와 나눈 대화는 늘 그랬듯이 내겐 나름 심각했을지 모르지만 아내에겐 철부지 아들 같은 남편의 허무맹랑한 얘기로 흘려들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렇지만 친구도 없는 중년의 남자에게 이런 같잖은 대화라도 응해주는 친구 같은 아내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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