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마흔 중년의 제주섬 치유기
제주에서의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육지에서 쳇바퀴 굴리던 삶이 아주 먼 과거의 일처럼 아득해졌다. 제주의 여름은 후텁지근했다. 지리한 장마는 낮은 구름을 내려 온평리 바당과 성산일출봉을 휘감고 끈적끈적한 이물감과 안방 하얀 벽지에 회색 곰팡이를 선물로 내놓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제주에서, 가족과 함께 놀고 있었으니깐.
우리 동네 온평리에는 제비가 날았다. 구름이 두텁게 깔린 날에는 더 낮게 날았다. 길을 걷는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오다 급격히 솟구치곤 해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메이저리거 김병현 선수의 리즈 시절 업슛을 보는 것 같았다. 제비 한 쌍이 우리 집 처마 한구석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더니 이내 새끼들이 부화했다. 우리 부부처럼 이 녀석들도 세 마리를 육추했는데,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부모가 되는 건 쉬운 게 아닌 모양이다. 제비 부부가 종일 먹이를 구해 물어오는 부단한 모습에 절로 감정이입이 되어서 짠한 마음이었다.
감사하게도 제비들은 성공리에 육추를 마쳤다. 덩치가 어미만 해진 새끼들이 첫 비행을 시작하더니 곧 여기저기로 날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완전히 이소를 해서 텅 빈 둥지만 남겨진 모습을 보자니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이 마음에 잔뜩 스며들었다. 뿌듯함과 섭섭함이 묘하게 섞여 들숨과 날숨처럼 들락거렸다. 처마 한켠 제비둥지와 우리 가족의 온평리 제주살이가 겹쳐 다가왔다. 우리도 이곳에서 아이들을 건강하고 바르게 길러낼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도 새끼 제비들처럼 제 앞길로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을까? 성경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새 힘을 얻어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할’ 소년기를 보낼 수 있을까? 그러기를 소망한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자 동네 여기저기서 흐드러지게 피어 제주의 여름을 알렸던 수국은 화려한 절정을 고하고 하루하루 까맣게 잎을 태우며 시들어갔다. 장마 기간 날은 흐렸고 비는 주룩대며 내리다가도 드라마틱하게 하늘이 열리곤 했다.
톡 터진 구름 사이로 뽀송뽀송한 햇빛이 와랑와랑 번져날 때면 햇볕은 행복이 되어 내 마음에도 찰랑거렸다. 맑게 개어 종일 푸른 날도 있었다. 이런 날에는 카메라를 들고 꽃을 찍었다. 파란 하늘과 대비해 꽃이 지닌 나름의 원색이 주변을 물들였다.
올레길 1코스와 2코스를 비를 맞으며, 때로는 저녁 늦거름의 소색이는 햇빛을 받으며 걸었다. 인적 하나 없는 올레길을 걷노라면, 갑자기 옆 수풀에서 까투리가 후드득 놀라 날아 올랐다. 덩달아 놀란 나 역시도 움찔했다가 이내 “하하하핫~”하고 자지러졌다. 도시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짜르르한 설레임을 이 길 위에서 누렸다.
호로롱 우는 새, 끄악끄악 우는 새, 부리가 길고 몸이 가는 새, 두발로 총총총총 뛰는 새, 빨간 열매를 문 새, 잠자리를 낚아챈 새들이 내 올레길 여정을 동행해 주었다. 참새, 까치, 까마귀 정도만 알던 나는 돌연 부끄러워졌다. 이 새들과 함께 한 행복한 순간들이 나의 무지로 하나의 몸짓으로만 내게 남았기 때문이었다. 멧새야, 직박구리야, 동박새야.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줄께. 나에게로 와 꽃이 되어주렴.
우리동네 온평리를 열운이라 부른다. 열운이 마을은 제주의 태고적 이야기가 담긴 유서 깊은 곳을 여럿 품고 있었다. 탐라국 시조인 고,양,부 삼인은 열운이 연혼포에서 바다를 건너 온 벽랑국의 삼공주를 맞이했단다. 이들의 만남을 기뻐한 하늘도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해서 황로알이라 이름의 해변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수국이 화려하게 피어나 유명 관광지가 된 혼인지에서 세 쌍은 혼례를 올리고 신방터라는 작은 동굴에서 첫날밤을 보냈단다.
매년 가을이 되면 온평리는 큰 혼인지 축제를 연다.
“잔치햄수다 먹으래옵써(잔치를 엽니다. 먹으러 오세요)”
상당 기간 잔치준비에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황로알부터 혼인지까지 꼬마 신랑 신부를 앞세운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다채로운 행사가 혼인지에서 열렸다. 노래자랑도 있었고 아이들부터 아주망, 동네 할망들까지 온 주민들이 준비한 공연들도 함께 열렸다. 잔치답게 먹을 것 역시 푸짐했다. 신청자를 대상으로 리마인드 웨딩을 전통 혼례로 열어주었다. 동네 신참인 우리 가족도 당당한 구성원이 되어 혼인지 축제에 참가했다. 나와 아내는 각자 맡은 역할대로 분장을 하고 퍼레이드에 동참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연습한 난타공연을 축제 마당에서 선보였다. 마지막에는 경품추첨이 있어 아이들과 행운을 기대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행운이 넘쳤는지 큰아이 빈이가 엄청 큰 제습기를 경품으로 받았다. 모처럼 공동체에 속한 안온한 마음과 제주살이에 꼭 필요한 전자제품을 꽁으로 얻은 행복감에 가을철 혼인지 잔칫날은 그윽하게 익어갔다.
이주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주가 더 좋아졌다. 그리고 이 마을은 더 좋았다. 온평(溫平)이라는 이름이 좋았다. 이름처럼 나도 절로 평온(平溫)해졌다. 그래서 ‘온평리 이평온’이라는 이름으로 살았으면 했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을 바꿀 수는 없으니, 온라인에서 닉네임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라임도 딱딱 맞았고 내 염원을 제대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 이렇게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온평리에 사는 이평온입니다!”
“오늘도 언제나 평온합니다. 여러분도 평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