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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평리이평온 Sep 13. 2022

2-03. 김영갑이 사랑한 용눈이오름, 나도 애정합니다

불타버린 마흔 중년의 제주섬 치유기

03. 김영갑이 사랑한 용눈이 오름 나도 애정합니다      


    

오래전, 대학 졸업 후 갈길 몰라 헤매던 1년의 백수 생활 끝에 취직에 성공했던 이십대 후반 시절, 아내(당시 여자친구)는 입사선물로 한창 유행하던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를 내게 선물했었다.      


그때부터다. 사진을 좋아하기 시작한 때가.      


사진을 찍을 때는, 뭐랄까?

한눈을 찡긋 감고 바라보는 세상은,  

   

작지만 맑은 사각형 뷰파인더 안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물들이 서걱서걱 걸어 들어와 

각자만의 표정과 풍경으로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오늘 행복하니?”     


그때마다 난 늘 대답하곤 했었다.     


“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서른 넘어 첫 제주여행을 왔었다. 사진에 갓 눈을 뜬 당시라, 쨍하고 알록달록한 이국적인 원색의 풍경에 목마르던 시절이었는데,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에메랄드빛 바다, 초록이 넘실대는 난드르와 검은빛 빌레가 어우러진 제주의 풍경은 나를 송두리째 매료시켜 버렸다.      




관광객으로 며칠간 제주에 올 때는 늘 화창한 날씨를 소망했었다. 날씨가 궂거나 해서 사물들이 빛을 잃어 풍경들이 숨을 죽일 때는 늘 아쉬움 마음으로 돌아서곤 했었다. 원색의 날것들이 펄떡펄떡 뛰는 풍경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제는 제주에 거주하게 되면서, 비오는 날, 흐린 날도 그 나름의 멋과 맛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급하지 않게 잠깐의 여유를 가지면서 조금 더 나긋한 시선으로 느긋하게 바라보게 되니, 흐릿하고 희미한 가운데 제주만의 숨들이 오롯이 피어나는 것을 찬찬히 헤아려 살필 수 있었다.

     

특히 야트막한 제주의 오름에서 맞는 바람을 좋아했다. 시골집 어머니 품 마냥 안기고 싶을 때마다 포근하게 나를 감싸주던 오름에 올라 풀썩 주저앉은 채로 한참을 하늘멍 풀멍을 때리다 보면 바람 역시 잔잔하게 때로는 시원하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김영갑 작가의 사진에는 오름에서 맞이했던 제주 바람이 묻어있다. 갤러리 두모악에 들어섰을 때, 흰 벽 한가운데 무심한 듯 걸린 채로 나를 맞아주던, 이미 돌아가고 없는 작가가 이미지로 남겨놓은 중산간 오름의 순간은 둔탁한 둔기로 변해 수도없이 내 심장을 쿵쾅쿵쾅 때려대기 시작했다.      


6*17 판형의 파노라마 사진 안에 담긴 날것의 제주도. 예쁘고 쨍한 제주도가 아닌, 왠지 모를 애절함과 고독, 그리고 자유가 담겨 있는 제주 중산간의 들녘에서 나는 김영갑 작가가 사진에 남겨 놓은 바람을 한창이나 맞고 있었다.     


김영갑 작가를 더 알고 싶어서 그가 쓴 글들과 사진을 탐독했었다. 그리고 제주에 여행 올 때마다 그가 쏘다니던 중산간 난드르를 헤매기 시작했다. 여전히 희미해서 감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은 김영갑님의 제주를 나도 향유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제주에 입도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김영갑 사진가가 가장 사랑했다고 하는 용눈이 오름을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 고독하겠지만 방랑할 수 있고, 배고프겠지만 자유로운, 섬사람이 되고픈 뭍의 사람으로 살아갈 제주살이를 용눈이 오름을 오르며 느끼게 해주고 싶었었다.      


비록 아이들이 오름의 부드러운 능선과 솟구쳤다 꺼져버린 굼부리보다는 오름에 사는 벌레와 풀에 더 관심을 가졌던 하루였지만,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걷는 이 짧은 시간이 훗날에 서로를 끌어당기고 추억을 공유하게 당겨주는 굵은 삼겹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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