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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평리이평온 Sep 20. 2022

2-07. 삼각봉 대피소의 찐계란 두개

불타버린 마흔 중년의 제주섬 치유기

07. 삼각봉 대피소의 찐계란 두개     


     

“제주에 가면 뭘 하고 싶어?”


“난 한라산에 갈테야. 한 번 말고 여러 번, 계절마다 코스별로 다닐 거야. 폭우가 쏟아져 백록담이 찰랑거리는 모습도 보고 싶고, 산철쭉 만발한 천상의 화원 6월의 선작지왓도 걷고 싶어. 사위가 온통 눈으로 하얀데 검은 남벽이 우뚝 솟은 그곳에 내 발자국도 남겨 보고 싶고.”     


제주 이주를 결정한 후 아내와 꿈꾸듯 나눈 이야기에서 내 안에 한라산이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늙으신 부모님이나 어린아이들과 함께한 가족여행 때는 입맛만 다시며 아쉬워했던 한라산 산행을 이제는 동네 뒷산 가듯 갈 수 있다는 것에 무척 행복했다. 해발 1947M의 화산봉우리, 육지의 다른 산과는 다른 풍경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 제주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제주의 어머니.     


태풍이 몰아치고 며칠이 지난 한여름 어느 늦은 밤, 

‘이 정도 비였으면 백록담에 물이 가득할 것 같은데!

내일 한라산이나 올라볼까?’ 하며 즉흥적인 산행을 결정했다. 오가는 기름값을 아껴본다면서 성산에서 관음사 초입까지 버스를 타고선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배짱이었는지, 우리나라 가장 높은 산에 가는 길이었는데도 마치 동네 뒷산 가듯이 배낭에 생수 하나만 넣은 채 아침 일찍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아침밥도 굶은 채로 버스를 기다리는데, 시작부터가 난관이었다. 40분을 기다린 후에 버스를 탔다. 중산간 길과 삼나무 숲길을 한 시간 달려 제주국제대 입구에서 내렸다. 이곳부터 관음사 탐방로 초입까지는 여전히 5KM를 더 가야 했다. 버스도 없었고 호기로운 마음에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오전 하늘은 파랗다 못해 검푸르렀고 녹음은 싱그러웠다. 걷는 길 왼편으로는 세미양 오름이 솟아있었고 오른편으로는 제주 북쪽 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 곳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 햇빛으로 달궈지는 오르막 아스팔트길 위에서 난 프라이팬의 계란 후라이 마냥 노릇하게 구워졌다. 이내 챙겨 온 물 한 통을 다 비웠지만 길은 끝이 없었고 난 터벅대며 걸었다. 하허호호 번호판을 단 렌터카들은 씽씽대며 신나게 내 옆을 지나쳤다.   

  

관음사에 도착하니 벌써 배가 고파왔다. 일주문부터 천왕문까지 백 미터가 넘는 길 양옆으로 작은 불상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과하고 화려하지 않아 좋았다. 소박하면서도 단정한 불상들을 자세히 보니 모두 다른 옷과 다른 손모양으로 조각이 되어 있었다. 단, 제주도라 그런지 하루방들도 쓰고 있는 현무암으로 만든 거친 갓을 모두 머리에 이고 있었는데, 요즘 복장으로 치면 말끔한 정장에 시골농부의 밀짚모자를 쓴 어색한 모양새였지만, 이상하게도 참 잘 어울렸다. 


    

관음사에서 한참을 머문 후 한라산 등산 초입인 관음사지구탐방지원센터까지 걸었다. 시간은 한참이나 흘렀고 얼마 전 제주를 휩쓴 태풍으로 낙석이 생겨 통제된 관음사 탐방로로는 백록담까지 갈 수 없다 하였다. 어쩐지 입산하는 등산객이 하나도 없나 했다. 정말 동네 뒷산 가듯 사전검색 하나 없이 왔던 내 모습이 한심스러웠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삼각봉 대피소까지라고 가자 싶어 나 홀로 걷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3대 계곡 중 하나라는 장엄한 탐라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한라산을 올랐다. 며칠 전 큰비가 내려서 물이 크게 흐를 줄 알았는데, 섬이 비를 싹 빨아들였는지 내창에는 각양의 용암 돌만이 이리저리 구르다 서 있었고 커다란 아가리를 벌린 괴는 텅 비어 있었다.



삼복더위가 푹푹 찐 무더운 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아스팔트 길을 내쳐 걸어 소진된 힘은 가파른 등산로에서도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 조릿대가 그윽하게 펼쳐진 길을 지나 해송이 시원하게 하늘로 뻗은 숲에는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이 좋은 길을 나는 기진맥진한 채로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극기훈련 하듯 올랐다. 



새벽에 집을 나섰는데, 오후 한시가 넘어 삼각봉 대피소에 이르렀다. 정말 바보였던 것 같다. 육지 큰 산 대피소처럼 그리고 윗세오름 대피소처럼 이곳 삼각봉 대피소에서도 먹는 것을 파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주린 배와 목마름을 부여잡고 대피소만 가면 컵라면과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 산을 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텅빈 대피소에서 난 실신하듯 쓰러져 버렸다. 이제 더 이상 내려갈 힘이 없었다. 한참을 널부러져 있는데, 이 모습이 처량해 보였는지 국립공원 관리요원이 다가왔다.


“이거라도 드세요. 먼저 온 등산객이 주고 간 것이에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민 삶은 계란 두 개와 커피 한잔을 무시로 날씨가 변해 삼각봉을 휘감싸는 안개의 춤사위를 바라보며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신기했다. 힘이 하나도 없어 쓰러져 있고만 싶었는데, 계란 두 개의 힘으로 다시 한라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제주국제대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버스를 타고 온평리 집에 돌아오니 해는 져서 어둑어둑한 밤이 되었다.      


정상에 가지도 못했다. 물 가득한 백록담 근처도 못 가봤다. 아내는 내 하루 고생담을 듣고 ‘으이구 준비 좀 하고 가지’하며 고소한 표정을 지은 채 큰소리로 웃었다.      


“그래도 나 뱃살 빠진 것 같지 않아? 나 다시 한라산에 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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