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마흔 중년의 제주섬 치유기
"웃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에요"
어제 둘째아이 결이가 한 말이다. 일곱살 아이의 실없는 우스갯소리 같았는데, 머리에 맴돌아 계속 곱씹게 되니 나름 심오하다.
맞다. 웃어야 사람이다.
생각해 보니, 어릴 적 난 표정이 참 다양한 아이였다. 인상파라는 소리도 들었고, 하회탈 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파안대소하기도 했고 잘 울기도 했었다. 표정을 감추지 않았었다. 솔직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배우 최민식 님의 주름진 얼굴을 좋아했다. 나도 중년이 되면 희끗한 머리와 굵은 주름을 갖고 싶었다. 내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과 희로애락을 볼 수 있었으면 했다. 더불어 꾸밈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소망과는 반대로 잘 웃지 않게 되었다.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어깨에 쌓여 버거워질 무렵부터 순전하게 웃지 못했던 것 같다. 얼굴 근육도 다른 몸의 근육과 같아 쓰지 않으면 퇴화하는지, 잘 웃지 않자 어쩌다 웃을 일이 생겨도 웃는 모습은 점점 일그러져만 갔다. 이런 내 모습이 전혀 사랑스럽지 않았다.
“승룡씨는 왜 이리 얼굴이 검어요?”
몇 년 전, 회사 복도에서 잠깐 스치며 무심한 듯 툭 던진 회사 선배의 한마디에 그간 감춰왔던 내 민낯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워 화들짝 놀란 적이 있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바라본 내 얼굴에는 검은 기미가 잔뜩 올라오고 표정은 표독스러웠다. 거울을 보며 슬퍼졌다. 울고 싶어졌고 못 마시는 술을 한잔 하고픈 울적함이 들이닥쳤다.
한 부서에서 7년간 같은 일을 하던 때였다. 회사 내 온갖 잡다한 일을 하는 역할이라, 절대적인 업무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쿨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몸에는 피로가 쌓여만 갔고 스트레스 역시 마음에 차곡차곡 담겨만 갔다. 임계점을 넘었는지 어느 날부터인가 화가 나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거래처와 업무전화를 하다가 분이 차올라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주먹으로 벽을 내려쳐 피부가 찢겨 나갔다. 이런 내 모습이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우울증 초기였다. 다행히 처방해 준 안정제를 복용하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평생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내겠다고 다짐했던 크리스천으로서 무척 부끄러웠다.
마음이 곪으니 피부도 곪았다. 마음이 늙으니 피부도 늙었다. 외면하고 싶었고 감추고 싶었는데, 가면은 쉽게 벗겨져 버렸다. 다른 이들도 쉽게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잠자리에 누우면 배낭 하나 메고 세계 이곳저곳을 떠도는 꿈을 꾸곤 했다. 휴식과 자유를 원했다.
휴직을 결정하니 마음이 가난해졌다. 감사하게도 궁핍하여 조급하기보다는 무엇인가를 풍성히 채우고 싶은 갈급함이 커져만 갔다. 평소 성경말씀을 묵상할 때는 좀처럼 체감되지 않았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이 확 다가왔다.
“복 받은 자여. 그대는 심령이 가난하고 천국이 너의 것이구나”
가난함에서 풍요와 충만이 찾아오는 듯 했다.
먼저 웃는 습관을 들여보기로 했다. 거울 앞에 서서 “으하하하하” 소리를 내어 웃어보았다. 어색했기에 박수도 짝짝짝 치면서 웃어 보았다. 조금은 자연스러웠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믿고 웃음에도 의지를 내기 시작했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웃으면 복이 와요!
거울 속 비친 내 자신에게 크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