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마흔 중년의 제주섬 치유기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 둘째아이 결이가 묻는다.
"아빠, 어디서 잘 거에요?"
"안방 침대에서 잘 건데?"
"그럼 나도 침대에서 잘 거에요"
눈이 반쯤 잠긴 둘째 녀석이 오늘은 꼭 아빠 옆에서 자고 싶다 한다. 함께 방에 들어와 불을 끄고 누웠다. 아이는 작은 고사리 손으로 아빠를 꼭 안았다. 나는 아이와 볼을 부비다 볼 뽀뽀를 하고는 손을 쥐며 말했다.
"결아, 아빠가 우리 결이 최고로 사랑해!"
어둠 속에서도 아이가 활짝 웃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째가 잠들 때까지 같이 누워 곁을 지켜주었다. 일곱살 아이도 안다. 아빠에게 특별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아빠가 변할 것 같다는 예감을 느낀 걸까?
12년 넘게 일했던 직장에 휴직원를 제출했다. 재가를 받고 마무리를 짓고서는 퇴근했다.
매일매일 행복하기로 다짐했다. 벌어 놓은 것도, 비빌 언덕도 없었다. 그런데도 퇴사라는 배수진을 친 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외벌이 아빠가 육아휴직을?'
보수성이 팽배해 크게 당겨 놓은 활시위 마냥 팽팽한 긴장감이 넘치는 회사 분위기가 한층 날이 섰다.
“나름 혜택받은 네가? 왜? 승진도 빠르잖아? 너만 힘들어? 뭐 하려고? 신중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봐!”
부서 팀장님과 그 위 처장님, 그리고 상무이사님까지 면담을 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쉬지 않고 달음박질했던 굴레를 멈춰야 했다.
더 이상 견딜 힘이 없었다. 인생이 여든이라면 마흔이 되었기에 ‘내 인생의 Half-Time’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쉬기로 했다. 아니다. 무작정 놀기로 했다. 직장동료들의 걱정과 조언만큼 나도 스스로 많은 질문을 해댔다.
해답은 없었다. 남은 삶은 어떻게 살지? 생각할수록 걱정만 돼서 그냥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단지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돈을 벌던 시간을 내어 대신 행복을 사기로 했다. 언제까지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삶의 방향을 바꿔보기로 했다.
급격하게 삶의 방향을 바꾸더라도 내 마음속 이어도로 여겼던 새로운 곳이라면 어려움도 이겨내고 꼬닥꼬닥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존의 삶과 철저한 단절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스로 고립을 택했다. 바다를 건너보기로 했다.
내게는 여전히 외딴 섬. 제주로 이주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