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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평리이평온 Sep 07. 2022

1-07. 가족사진 프로젝트

불타버린 마흔 중년의 제주섬 치유기

07. 가족사진 프로젝트          



오남매 중 막내 누나나 형처럼 먼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나라, 단지 바다를 건너 이사하는 것인데도, 시골의 연로하신 아버지, 어머니는 막둥이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고 하셨다. 하기야 어른이 되었어도 부모님이나 누나들 손을 타야 했던 그래서 여전히 믿음직스럽지 못한 막내아들이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무작정 유배지 같은 섬, 제주도로 떠난다고 하니 잠을 못 이루실 만도 했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야 한다고 하는데, 너는 어째 애들 데리고 제주로 간다고 하냐?”  

   

“엄마! 요즘엔 잘사는 사람들이 다 제주로 가요. 그리고 서울에서 비행기 한 시간만 타면 가는 곳이에요. 서울에서 시골집 오는 게 제주가는 것보다 더 오래 걸려. 잘 살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안심시켜 드리고자 들른 고향집에서 팔순이 넘으신 부모님의 걱정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든든한 표정으로 가슴 활짝 펴고 큰소리 빵빵 쳐댔지만 나 역시 돌아오는 길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인생의 후반전을 제주에서 열어보겠다고, 내 딴엔 큰 결단을 내렸지만, 얽어매 때로는 거추장스러웠지만 대개는 나를 지탱해 준 반석같던 인연들과 멀어지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왕위를 찬탈당하고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제주도로까지 쫓겨나 긴 생애를 마감했던 조선시대 광해군의 씁쓸한 한시가 떠올랐다.



“부는 바람 뿌리는 비, 성문 옆 지나는 길

후텁지근 장독기운 백척으로 솟은 누각

창해의 파도속에 날은 이미 어스름

푸른산의 슬픈 빛은 싸늘한 가을 기운

가고 싶어 왕손초를 신물나게 보았고

나그네 꿈은 제주에서 자주 깨이네

고국의 존망은 소식조차 끊어지고

연기 깔린 강물결 외딴재에 누웠구나”



‘이게 뭐람?’ 이런 신파조의 감정은........?


내가 꿈꾸는 제주는, 누구도 나를 헤치지 못하는 도피성, 김영갑 사진가가 누비던 이어도가 아니었나? 불안과 걱정보다는 기대감와 긍정의 생각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과 나의 염려를 덜어 볼 수 있을까 궁리하다 그간 찍어만 놓고 데이터 파일로만 묵혀 두었던 가족사진들을 간추려 인화해 액자를 여럿 만들었다.    

 

“아빠, 엄마. 사진액자를 보내니 집 곳곳에 올려놓고 보세요. 우리 잘 살께요. 정리되면 제주집에 모실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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