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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Sep 18. 2023

털은 이제 더이상 나에게 우열감을 주지 않는다

학창 시절, 친구들에 비해 빨리 자라지 않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언제 키가 클까? 언제 여드름이 날까? 언제 털이 날까? 항상 이런 생각을 하고 지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키는 150cm를 겨우 넘었고 얼굴은 매끈매끈하여 초등학생이라 말해도 믿을 정도였다.


체육 수업을 마치고 교실에 오면 흘린 땀을 말리기 위해 책상 위에 올라가 선풍기 바람을 맞는 친구들이 있었다. 몸은 이미 다 자란 친구들이라 웃통을 벗으면 겨드랑이 털은 물론이거니와 가슴에서 배까지 시꺼맸다. 그런 별난 녀석들을 보면서 '나는 언제 저렇게 겨드랑이 털이 날까?' 하며 매끈한 내 겨드랑이를 쳐다보곤 했다.


어느 날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는 언제부터 털이 나셨어요? 반 친구 대부분은 겨드랑이 털이 났고 어떤 애들은 면도도 하는데 저는 안 나네요!"

"나도 스무 살 때까지는 수염이 안 났다. 20대 중반 넘어서도 면도는 한참 안 해도 괜찮은 정도였다."

아버지의 이 말은 내게 힘이 되었다.

'단지 늦게 자라는 것일 뿐이지 나도 언젠간 나겠구나!'


그런 나에게도 다리에는 털이 꽤 있었다. 덕분에 반바지를 입으면 친구들과 별 차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겉으로는 없지만 속으로는 심하던 털에 대한 열등감은 1년 만에 키가 부쩍 크면서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졸업할 때가 되니 나도 어른 몸을 가지게 되었다. 


만 22살에 군에서 제대를 하니 가슴에 털이 나기 시작했다. 길진 않았지만 배에도 털이 나면서 이번엔 털에 대한 우월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가지고 있지 않은 가슴털은 어머니의 유전자에서 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 이유는 초등학교도 안 다니던 어릴 때 외가에 놀러 가서 본 외삼촌의 모습 때문이었다. 당시에 대학생이던 삼촌이 등목을 하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 노출한 상체는 외국의 털 많은 사람들과 같았다. 덥수룩하게 목까지 자라는 수염도 신기했다.


내가 매일 면도할 만큼 수염이 자란 것은 소싯적 아버지와 같이 20대 중반 이후였다. 다행히 수염이 거뭇하게 많이 나는 사람들처럼 아침에 면도해도 저녁이 되면 다시 면도해야 할 만큼 자라지는 않았다. 하루에 한 번만 면도해도 깔끔했다. 나는 이런 나의 모습에 상당히 높은 만족감을 가지고 있었다.


수년전 부터 별일이 없으면 어린 아이를 데리고 주말마다 본가에 놀러가고 있다. 본가에 갈때면 늘 애들 물건 챙기느라 정작 나는 간단히 세수만 하고 편안하게 가게 된다. 그러면 면도를 하지 않고 반바지에 T셔츠를 걸친 내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깔끔하게 하고 다니라며 한 소리하신다. 최근에는 T셔츠 사이에 살짝 보이는 가슴털이 보기 싫다고 털을 다 뽑으라고 말씀하셨다. 평소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어떤 사람은 가지고 싶어도 안 나는 이 소중한 털을 없애버리라니... 그 자리에서 웃고 말았다.


주중에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자꾸 어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어머니가 보기 싫다면 무슨 이유가 있겠지? 지금까지 어머니 말씀을 들어서 나빴던 적이 없었잖아!'

이런 생각이 계속되자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크림이라도 사놓기로 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장 잘 팔린다는 제모크림을 주문하였다.


다시 주말이 되어 애들을 본가에 데려다 놓았다. 약속되어 있던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는데 거울에 비친 가슴털이 눈에 거슬렸다. 생각났을 때 하지 않으면 애들이 돌아오면 또 언제 할 수 있을지 몰랐다. 집에 도착해있던 제모크림 박스를 뜯었다. 상체에서 털이 보이는 곳마다 크림을 잔뜩 찍어 발랐다. 목아래부터 배꼽 주변까지 전부를 덮었다. 설명서에 따라 10분이 지난 뒤에 크림을 씻어내니 상체가 미끈했다. 고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 보는 털 한올 없는 내 상체가 낯설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제모를 하는구나!'

그동안 털에 가려졌던 내 피부가 유독 하얘 보였다. 섭섭함은 단 1도 없었다.


집에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저녁에 아이들을 데리러 본가로 갔다.

어머니를 보자마자 "어머니가 그렇게 노래 부르시던 제모를 했습니다." 하며 매끈한 상체를 보여드렸다.

"속이 다 시원하다."라는 어머니를 보면서 기쁜 마음이 들었다.


제대하고부터 계속 나와 함께 한 가슴털은 나의 자랑이었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여름에나 그 존재를 알 수 있었던 털로 인해 나는 마음으로나마 그동안 우쭐댈 수 있었다. 그런 털을 어머니 말씀 한마디에 없애버렸다. 그런데 그것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가슴털은 나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신감의 상징이었을 뿐 아무도 털을 보며 나를 평가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남들도 어머니처럼 '저 사람은 보기 싫은 털을 왜 없애지 않고 있을까?'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제 나는 가슴털이 없는 미끈한 내 상체가 마음에 든다. 지저분한 털이 없어진 자리의 뽀얀 살갗이 자랑스럽다. 누가 내 상체를 일부러 볼 일은 없겠지만 나는 또 한동안 미끈한 상체를 마음으로나마 우쭐대며 살아갈 것이다. 젊은 시절의 나는 털이 거기 있음으로 자신감이 넘쳤고 지금의 나는 털이 거기 없음으로 자신감이 넘친다. 털은 이제 더이상 나에게 우열감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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