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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Sep 21. 2024

후계자를 키우는 삶

요즘 후계자를 키우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시간은 2세를 키우는 육아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후임 사회복지사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있다.


후계자 육성은 내가 10년 전 임원과 부서장 교육운영을 할 때 그 커리큘럼에 반드시 포함되는 과목이었다. 처음 운영을 맡을 때는 '자기만 똑바로 하면 되지 필요역량에 후계자 육성을 넣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가고 내가 팀장이 되고 관리업무를 하면서 후계자 육성이야 말로 자기를 단련하면서 아래 사람을 키우는 필수 역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없는 다음을 든든히 책임져줄 사람을 발굴하여 키우는 것은 여러모로 도전적인 일이었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손빨래를 하면서 '이만한 신랑감이 없지.' 라며 혼자 소위 자뻑을 하기도 했지만 남들 도서관에 갈 때 방에서 게임하며 빈둥거리면서 '이렇게 살 거면 굳이 애를 낳을 필요 있나.' 생각하기도 하였다. 고집 피우고, 일을 미루고, 하고 싶은 것을 하여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세상에 한 명 더 있는 게 안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세월은 계속 흘러서 결혼을 남일 같이 생각하던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고 허니문 베이비를 가지게 되면서 불쑥 아빠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첫째 아이는 내가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아기가 5살 될 때까지 누가 키워 준다면 애를 갖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던 내가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고 밤새 우는 애를 달래고 있었다. 편히 쉴 날 없는 육아기간 동안 부자간의 끈끈한 정이 자랐다. 내가 어릴 때 하지 못한 경험을 시켜주려고 외국여행도 데려가고 아빠가 단지 돈을 벌어오는 존재가 아니란 것을 알리기 위해 육아휴직도 불사하였다. 산업화 시대는 끝이 났고 마음만 먹으면 엄마와의 추억만큼 아빠와의 추억도 만들 수 있는 사회가 된 덕을 보았다.


조심성 강하고 마른 첫째는 대담하게 생각하고 잘 먹는 게 육성의 1순위였다. 나와 다른 성격의 첫째 덕에 나 같은 사람 하나 더 있는 세상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것에 한번 빠지면 주야장천 그것만 파는 성격도 마음에 들었고 7살 때 줄넘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꾸준히 학원에서 실력을 키우며 운동을 하는 것도 좋았다.


나와 똑 닮은 둘째가 태어나면서 후계자육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모습에 더해서 정리정돈 안 하고 생떼 쓰고 밥을 거르고 노는 모습도 전부 복사한 듯 똑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둘째는 자연스럽게 형과 비교되었다. 30개월의 같은 시점으로 형보다 2cm가 작고 말이 좀 더 느린 둘째를 보며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또래애들과 비교하면 평균이었다. 


아이가 형아를 때리거나 어른 머리카락을 뽑고 개미를 밟아버리는 행동을 할 때는 단호하게 혼냈다. 자기 똥기저귀를 휴지통에 버리거나 빨래통에 자기 빨래를 가져다 놓기를 시키고 해내면 박수치며 칭찬하였다. 선함(이타심)을 남기고 악함(이기심)은 깨달음을 주어 사전에 줄여가는 방법이었다. 비로소 나와 같은 존재를 남기는 두려움이 사라졌다.


사회복지사를 채용했다. 내가 본업인 경영지도사에 더 집중하려면 사회복지사로서의 미련을 버려야 했다. 7개월간 배워서 이제야 한 사람의 몫을 하게 되었지만 여긴 내 자리가 아니었다. 내게 인수인계를 하고 나간 선임 사회복지사의 자리에 내가 인수인계 하여야 할 후임 사회복지사가 들어왔다.


첫 3개월은 어리바리 감을 못 잡는 모습은 작년 말, 올해 초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한 실수를 거듭하지 않도록 세세하게 알려줬지만 다음 달이 되면 처음 듣는 듯했다. 두달이 지나도 내가 챙겨야 할 것이 줄지 않았다. 내가 도와주는 게 능사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석달 째 부터는 나는 뒤로 물러섰다. 되던 안되던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게 했다. 막힐 때 질문하면 그때서야 조언을 해주었다. 후임의 실력이 일일이 가르쳐 줄때와 달리 금방 늘었다. 멋 모를 때라고 찬찬히 알려주기보다 책임감을 쥐어주고 실수하며 배우게 해야 힘들어도 빨리 업무를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육아든 후계자 인수인계든 내가 없어도 혼자 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최종 목표란 점은 동일하다. 혼자 등교하는 씩씩한 첫째, 오늘 신은 양말을 벗어 빨래통에 넣어두는 둘째, 퇴근 전에 컴퓨터 앞에서 오늘 빠뜨린 건 없는지 체크하고 있는 후임자 모두 홀로서기 중이다.


이들에게 얼마나 오랜 시간 멘토로서 내가 같이 할지 모르지만 나의 단점은 없애고 장점만 가지는 더 나은 인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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