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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잃었어도 외양간은 고쳐놓는다

by CJbenitora

저녁식사를 하려고 간 처가에서 먼저 하원한 둘째를 데리고 놀고 있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학원을 마치고 온 큰아이가 거실로 뛰어들어왔다. 형아를 본 둘째는 형아가 책가방을 풀어놓고 있는 탁자로 종종걸음 쳐 왔다. 큰아이가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걸음을 옮기는데 그 발에 둘째가 걸려 순식간에 앞으로 넘어졌다.


"으앙~"


둘째는 탁자 모서리에 이마를 찍고 그대로 엎어졌다. 오른쪽 눈썹 옆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흘러나왔다. 아이를 돌려 안고 쏟아져 나오는 피를 손으로 막으며 "큰일 났다. 큰일 났다."를 연신 외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얘져서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울음소리를 들은 장모님이 뛰어오셔서 아이를 넘겨받았다. 티슈를 뽑아 피가 흐르는 것을 막고 괜찮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마침 처가에 와 있던 처남댁은 사태의 심각성을 한눈에 알아차리고 저녁에도 치료가 가능할 만한 병원에 전화를 넣었다. 그사이 나는 피투성이로 울부짖는 둘째를 보며 큰아이에게 벼락같이 고함을 질렀다.


"애가 달려오는 걸 봤으면 조심해야지 발은 왜 끌어서 걸리게 했어?"


큰아이는 피 흘리는 동생과 화를 내는 아빠를 보며 어떻게 할 줄 몰라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처남댁이 운전을 해주기로 했다. 아이를 안고 티슈로 상처를 막으며 차에 탔다. 가까운 소아과 병원에 도착하니 6시 55분이었다. 늘 가던 소아과라 마감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도 염치없이 들어가 의사 선생님을 찾았다. 사복으로 갈아입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나오던 의사 선생님은 아이를 한눈에 알아보고 달려왔다. 상처를 보고는 찢어진 것을 꿰매어야 해서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피가 어느 정도 멎은 상처부위에 밴드 하나를 붙여주었다.


"감사합니다"


이 말만 남기고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마침 연락을 받은 아이 엄마가 차를 몰고 소아과 앞으로 왔다. 처남댁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차를 바꿔 탔다. 대학병원 응급실까지는 3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이동하는 중간에 장모님께 응급실로 가고 있다고 전화드리니 큰애 저녁을 챙겨 먹일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하셨다. 큰애가 아빠가 돌아오면 크게 혼낼 것 같다고 벌벌 떨고 있다고도 하셨다. 전화를 끊기 전 아빠를 찾는 첫째에게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밥 먹고 놀고 있으라고 했다. 늦을 수도 있으니 졸리면 자라고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속으로는 아직도 이런 사태를 만든 첫째에게 화가 나있었다. 응급실로 가는 동안 둘째는 이제 상처가 아프지 않은지 조수석에 앉은 아빠품에서 차의 이것저것을 만지며 놀았다.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멈췄고 다른 내상도 보이지 않았다.


안심이 되자 이번 사고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난 아이들 바로 옆에 있었지만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 첫째의 움직임, 둘째의 움직임 모두 예상치 못했다. 탁자 모서리에 아이들이 박을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껏 아무 일이 없었기에 어떤 조치를 하지 않았다. 모서리 보호대 하나만 사서 끼웠어도 이렇게 까지 커질 일은 아니었다. 사고는 결국 아이 탓이 아닌 내 탓이었다.


더 유심히 지켜보지 못한, 미리 사고를 예상하지 못한, 사전조치를 해놓지 못한 바로 나의 잘못이었다. 그런데도 첫째에게 책임을 씌우며 큰소리를 낸 것이었다. 매번 문을 쾅 닫는다거나 소파며 의자를 뛰어다닐 때도 말로만 그만하라고 했지 '뭐 별일 있겠어'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사달이 일어나고서야 후회하는 것이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가 세발자전거를 타다가 하수구로 떨어졌을 때, 내 동생이 연탄불에 손을 데었을 때 우리를 안고 병원으로 뛰던 엄마의 심정이 이랬을까? 지금 나보다 몇 배는 가슴이 미어지셨겠지? 과거가 자꾸 떠올랐다. 첫째와 둘째에게 마음속으로 계속 용서를 빌었다.


응급실에서 2시간을 기다려 다섯 바늘을 꿰맸다. 상처를 밴드로 가리고 나온 둘째는 얼마나 울었는지 엄마품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치료비를 결제하고 나오면서 애 엄마는 일주일 뒤에 실밥을 풀러 갈 때는 성형외과로 가겠다고 했다. 이제 15개월 된 아이 이마에 생길 흉터를 최대한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11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오니 큰아이는 자고 있었다. 아직 집에도 가지 않고 기다리던 처남댁이 아이 상처가 잘 꿰매진 것을 보고 비로소 귀가하였다. 장모님께 인사드리고 아빠가 혼낼까 봐 겁에 질려 잠들었을 첫째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첫째가 일어났을 때 이 사고는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첫째는 역시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빠가 당황해서 그랬어. 어제 소리친 건 미안해."

"사고 나지 않도록 아빠가 미리 대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야!"

"동생 이마의 상처는 꿰매어놓았으니 잘 아물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둘째를 며칠을 두고 살펴보았는데 다행히 째진 상처 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만하기 다행이었다.


조만간 둘째의 이마에 있는 실밥을 풀 것이다. 그리고 흉터가 남지 않도록 잘 관리할 것이다. 더불어 이 일이 첫째의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아빠로서 행동과 말투도 늘 신경 쓸 것이다. 아이가 갈 만한 곳의 위험한 것은 치우고 보호밴드도 전부 씌워둘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에 따르면 나는 부주의로 소를 잃었다. 하지만 소는 계속 키워야 하기에 이제라도 외양간을 잘 고쳐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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