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에 사이를 두자

by 천정은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우화 가운데 고슴도치 딜레마 (Hedgehog Dilemma)라는 것이 있다.

고슴도치들은 날이 추워지면 추위를 막기 위해 서로에게 아주 가까이 간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가시에 찔려 화들짝 놀래며 서로 멀리 떨어진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곧 추위를 느끼고 서로 가까이 다가가지만 이내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픔을 피하려 다시금 떨어진다.

그들은 추위와 아픔 사이를 왕복하다가 마침내 서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

결국 두 마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절묘한 거리를 찾아내 가장 평안하면서도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는 고슴도치들은 결국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서로 간의 ‘적절한 거리 ’를 찾았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으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적절한 거리 ’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고 있다.

이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도 어느 날 원수가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또는, 상대가 나를 멀리하며 어제와 다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상대였지만, 어느 날 가장 원망스럽고 실망감만 안겨주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도 일하면서 육아하면서 살다 보니 나만 힘들게 지내는 것 같았다.

주위를 봐도 가족들이나 친지들이 육아 분담이나 반찬 등도 해다 날랐지만, 나의 경우는 그게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가까운 가족 시댁 식구들이 괜히 원망스러웠다.

어쩌면 나의 속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 가깝다는 이유로 툴툴 대기도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한테 함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하는 연인,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부모 등 내가 짜증내고 싶을 때 마음껏 내며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낸다.

그러면서 돌아서서 반성을 하고 눈물까지 흘리지만,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아는 동생은 어느 날 드디어 모태 솔로를 벗어났다며 좋아했다.

자신의 이상형이면서, 자신의 사랑이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남자 친구 자랑을 했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라고, 그렇게 자상한 사람은 없다며, 천생연분이라고 했다.

더 이상 직장생활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거 같다며 결혼해서 현모양처가 될 거라 자신만만했다

그렇게 연애한 지 6개월이 흐르자 어느 날은 헤어져야 할 거 같다며 눈물만 죽죽 흘린다.

이 동생은 남자 친구만 만나면 좋은 이야기 보단 직장에서의 짜증 나는 일만 이야기했다.

처음엔 잘 받아주던 남자 친구가 어느 날, 너는 너무 부정적인 거 같아.

늘 짜증만 내면 어떡하니..라는 말과 함께 내가 감당하기엔 부족한 거 같다며 이별을 통보했다.

자신은 자신 편이라서 싫든 좋든 다 보여줬더니 이제 와서 지치네,, 부정적이네 라고 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사람은 누구든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한때는 좋았던 사이일지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남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되고 만 것이다.

찰떡궁합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딱 붙어 다니며 좋아 보일지는 몰라도 너무 붙어 있다 보면 서로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치밀한 물질의 분자 구조라 하더라도 반드시 틈새는 있다. 이 세상에 딱 붙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주의 별들도 그렇다. 붙어 있는 별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다.

태양과 달과 지구가 각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태양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만약 서로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지구와 달은 태양에 잡아먹히거나 아니면 우주 허공으로 각기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우주만물도 적절한 거리를 두는데, 사랑 관계는 어떨 거 같은가?

일정한 숲 속에서도 나무들은 거리를 두고 자란다.

사람 관계도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지내야 한다.

직장에서도 나의 고민, 나의 일. 나의 사생활을 다 노출할 필요가 없다.

지금 당장은 안타까워하고, 들어주겠지만 언젠가 나에게 독이 되어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관계에는 적절한 거리가 존재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사소한 문제로 화내고, 업무로 만난 사람에게는 관대하다면 그건 잘못이다.

적절한 거리를 둔다면 이런 실수를 방지할 수 있다.

문 작가는 건강한 거리란 ‘나’는 나대로 존재하면서 ‘너’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고 했다.

문 작가는 이를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mind-mindness)’라고 불렀다.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비로소 상대에 대한 관심이 생깁니다. 그것이 진짜 관심이죠. 우리는 내가 바라는 걸 상대가 해주길 바라죠. 그런데 반대로 나는 상대방이 나를 그 자체로 좋아해 주길 바랍니다.”

거리를 두면 진심이 오간다고 표현했다.

사이가 좋기 위해서 우리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사이 ’라는 것을 한자어로 말하면 "사이 간 (間 )"을 이름이다. 그러니까 ‘사이가 좋다 ’는 것은 서로가 빈틈없이 딱 붙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적절한 거리 즉 간 (間 )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옛 선인들의 말 중에서 불가근불가원 (不可近 不可遠 ) 즉 "너무 가까이도 하지 말고 너무 멀리도 하지 말라 "고 했다. 이 역시 적당함의 덕목과 상통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관계에 적절한 거리를 두는 현명한 사람이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keyword
이전 11화아직도 기대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