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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Sep 27. 2024

5. 극 I 팀원, 극E 사수를 만나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경험은 그대로 두면 그냥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지만, 그 경험이 공유되면 다른 경험을 만들어가는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기존의 글들보다는 조금 더 주관적인 인사담당자 Opellie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기억의 조각에 크고 작은 살을 붙였기에 기본적으로 브런치북 '인사담당자 Opellie'는 실제 인물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인사담당자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생각  좀 그만하고 좀 움직여"


탁 트인, 모든 구성원이 다 볼 수 있는 사무실에서 나를  향하는 큰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순간 사무실의 모든 구성원들이 소리가 나는 곳을 보고 있었고 그 시선이 닿은 곳에는 큰 소리를 내는 내 사수분과 그 목소리의  대상이 되었던 내가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난 선임 중 인사업무 관점에서 배울 수 있었던 분을 이야기하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사실 함께 일한 시간은 1년 남짓에 불과했고 무엇보다 그는 나와 거의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일종의 행동주의자였다. 일단 실행하면서 마주하는 상황들을 해쳐나간다고 할까. 반면 나는 일종의 신중론자였다. 일단 생각해보고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성향이었다. 


극 I 팀원, 극 E 사수를 만나다

극단적인 E 성향의 사수는 극단적인 I 성향의 팀원의 모든 것을 못마땅해 했다. 예를 들어 그는 내가 술을 잘 못먹는 것마저도 인사담당자로서 자질의 부족함이라 여기고 본인의 이름을 딴 아카데미(?) 교육과정에 참여하게 했다. 방식은 간단했다. 저녁 등을 먹으러 가면 음식보다 술을 먼저 시키고 한잔씩 마시고 식사를 시작하는 식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 사수는 채용 당시 나에게 불합격 점수를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대표이사님이 채용을 결정하셨다고. 당시 대표이사 면접에 나 이외에 다른 지원자가 있었는데 사수는 그를 원했다고 했다. 하지만 대표님이 나를 선택했고 이번에도 못뽑으면 추가채용을 하지 않겠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뽑았다고. 그 이후에도 종종 회의실 등에서 생각 좀 그만하라는 말을 듣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극 E 사수는 19년 남짓의 사회생활을 통틀어 내가 '사수'라고  불렀던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처음부터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그는 내가 잘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무엇보다 그는 일을 잘했다. 경영진의 인정을 받고 있었고,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어굿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가끔 그의 말이 거칠기도 했지만 그의 일 하는 방식, 결과, 말과 행동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 달리 말해 배울  점이 있었다.


"생각  좀 그만하고 좀 움직여"


탁 트인, 그래서 다른 팀 구성원들이 다 볼 수 있는 사무실에서 그가 나에게 큰 소리를  냈고, 다른 구성원들의 이목이 나를  향하고 있을 때 많이  부끄럽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든 원인이 나에게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의 큰 목소리에 감정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좀더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게 있어 단어, 현상, 일 등을 이해한다는 것은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누군가에게 1+1=2라는 건 주어진 계산식에 의한 것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왜?'라는 질문에 대해 내 스스로 답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말과 행동으로 구체화할 수 있게 된다는 것.  내 생각이 적어도 내 스스로 던진 질문에 적정한 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자신있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이후 나는 더 많이 배우려 노력했고 늘어난 INPUT 만큼이나 생각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결과론이지만 나는 내가 생각이 많은 사람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주니어 시절에 그 누군가에게 이제 3~4년차 인사담당자로서 Opellie는 같이 일 하기 답답한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 말과 행동도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고, 여전히 완벽하진 않지만 적어도 인사에 대해서만큼은 극 I보다는 극 E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극 E와 극 I는 사실 표면적인 구분일 뿐 그리 큰 의미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당시 내 사수는 나보다 경험도 많았고 그만큼 배우고 생각한 것도 많았을테니 당시의 나보다 빠르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니었을까 싶다. 


다르다는 것, 특히나 그 다름이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그건 다소 불편한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인사라는 일을 하면서 리더분들에게 항상 하는 말 중 하나는 '큰 소리 내지 말기'이다. 만일 리더가 구성원의 부족함을 확인하고 구성원이 그걸 개선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면  더욱 더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고 권한다. 그건 큰 소리라는  외형이 실제 리더가 구성원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덮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끔 진짜 화를 내고 싶어서 큰소리를 내는 리더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 리더는 큰소리를 냄으로서 자신의 권위를 스스로 인식하며 위안할지 모르지만 그 상대방으로서 구성원들은 그로부터 리더라는 단어를 지우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진심을 전한다는 건 어렵다. 나는 그의 큰 소리를 들으면서도 왜 그를 싫어하지 않았던 걸까. 그건  말이나 행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무언가이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를 혼자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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