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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Apr 24. 2018

지나온 시간들의 생각 모음 <1>

개인 SNS에 끄적였던 낙서들을 모아놓은 공간의 탄생

이 글들은 개인 페이스북에 올렸던 예전의 단상들을 돌아보면서 발췌하여 남기는 글입니다. 

세상이 나를 온전히 알아줄 거라 기대하진 않지만 적어도 노력한 만큼의 기대는  하고 싶다. 그 노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내가 나를 볼 수 없듯이 그 누군가 그 노력의 가능성을 알아봐줄 사람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그 노력을 조금 더 하기위한 날들을 살아간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 하루를 맞이하는 그 경계의 시간을 오늘도 마주하고 있다.  2017년 11월 06일


길가의 정류장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서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그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기다림이 곧 끝날 것이라는 메시지에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곧 다가올 누군가를 기다리며 조금 더 기다리겠노라 다짐한다. 오래 전에 정류장에서 아무도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 때 그저 하릴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다. 그 땐 여유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초조함에 더 가까운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다가올 미래의 사건을 어느 수준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 그리고 세상은 갈수록 그러한 예측이 어려운 방향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증가하는 복잡성을 모두 통제하고 모두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과 그것은 불가능하다며 말하는 흐름이 마주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욕심이 그 욕심을 충족시키는 방식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어릴 적 암기 위주의 우리들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필터링하고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내는 사고 중심의 우리들로 말이다. 2017년 10월 29일


 


(일) 누군가에게 이건 왜하는건가요? 라고 물었고 누군가로부터 이래서 하는 거라고 들었단다. 같은 질문을 다른 누군가에게 이건 왜하는 건가요? 라고 물었고 그 다른 누군가는 저래서 하는 거라고 들었단다. 몇 번의 질문을 반복하고 나서야 난 그들이 사실은 왜 하는지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말았다. 왜 하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모르는 모두가 그걸 하겠다고 말하니 역시나 모르는 나도 그 무리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여전히 왜 하는가는 궁금하다. 그래도 지구는 둥글다고 중얼거린 갈릴레이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니 이건 갈릴레이를 언급할 거리가 아니다. 그냥 남들처럼 살아가길 , 그래서 큰 이슈없이 월급을 오래 받으며 살길 바라는 우리들 사람일 뿐이다. 2017년 10월 27일


나갔다 오는 길에 할머니 한 분이 수레를 밀어달라시기에 수레를 밀었다. 대학시절에 어머니는 누군가를 도와주려면 내 자신이 먼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셨었다. 도와드리려다가 일 만들 뻔 했다..(,, )운동 해야 겠다..근데 그 무거운 수레를 할머니 한 분이 움직이신다는 게 맘에 걸린다.

2017년 10월 21일




어제 오늘 '측정'이라는 주제에 대한 실무적 답을 찾아보기 위하여 Kaplan, Norton 의  Strategy map의 일부를 뒤적거리고 , 딘 R. 스피처의 'KPI 이노베이션'을 저녁 남는 시간 스벅에서 잠시 읽어보면서 문득 아래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process를 통해 가치(보다 엄밀히 말하면 기본가치라 말해야 할 듯도 하다)가 만들어지고, process를 통해 가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들의 행동이 개입되고, process를 통해 가치를 만드는 과정에 개입하는 우리의 행동과 그 행동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피드백은 그의 행위를 조정하도록 영향을 미치며 그러한 영향과 행동이 축적되어 하나의 관행 내지 행동의 기준이 형성하고 구성원의 의식에 내재화되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조직문화라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가 보다 제대로 된 측정을 하기 위해 그 사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은 기본적으로 process, 그것도 운영적 측면과 적응적 측면으로 구분한다면 운영적 측면의 process이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2017년 10월 14일



서점을 가면 참새가 방앗간을 기웃거리듯 인사관련 도서들에 새로운 게 있을까 라는 생각에 가장 먼저 해당 서가를 방문하곤 한다. 그러다 어제 문득 알게 된 건 두 개의 책장이 있는데 하나에는 '인사관리' 라 타이틀이 붙어 있고 다른 하나에는 '인적자원관리'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인사관리와 인적자원관리 라는 두 개의 타이틀로 서가에 구분을 해놨을까? 일단 어제 잠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건
 '인사관리'라는 단어가 제목이나 표지 등에 포함된 경우 '인사관리'로 '인적자원관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경우 '인적자원관리'로 구분해놨다는 점이었다. 인사관리나 인적자원관리가 단어가 외형상 다르니까 서점에서 분류하는 분도 그렇게 분류를 했으리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다. 실제 꽃혀 있는 책들을 보면 '인사관리'는 인사관리끼리, '인적자원관리'는 인적자원관리 끼리 모여있다. 그렇다고 오가는 직원 붙잡고 왜 서가의 타이틀을 분리해놨다고 물어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고 답을 얻을 가능성도 낮아 보이고. 더욱이 한 두 번 오간것도 아닌데 그걸 이제야 봤다는 나도 조금은 한심하고..세상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면 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관심있다고 말하는 분야에 대한 수준도 아직은 멀었다는 생각이다. 그저 That's All! 일 가능성도 있겠으나, 그 분류의 기준이 궁금해진 순간이다. 2017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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