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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에 둘째를 데리고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by Writer Choenghee

작년 2024년 10월 11일 금요일. 왼쪽 새끼손가락 골절로 수술을 하는 날이었다. 뱃속에 둘째가 임신 8개월째가 되던 즈음이었다.


아침 7시부터 물도 마시지 못하는 금식을 해야 했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엄마 탓으로 잠깐이라도 영양분 공급을 못 받는 둘째 생각으로 눈물이 맺히더랬다. 마침내 수술하는 병원으로 들어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손, 발, 팔, 허리 등 골절 수술을 대기 중이었고 그 장면을 보는 내내 우울함이 덮쳐 내내 두근거리는 가슴을 어찌할 바 몰랐다.

‘세상에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다니’

’아니, 하루에도 이렇게 다쳐서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다른 건 모르겠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안 아팠으면 좋겠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이런 장면을 매일 보고 사는 의사라는 직업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사명감과 비범하게 너른 가슴으로 생명을 살리겠다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해야 할 거라고. 고통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더라도 우울해지지 않는 그런 사람. 큰 동요 없는 무던함 와중에도 빨리 고통에서 저 사람을 구해내고 싶다는 의욕을 가진 사람.


내 딸들이 어떤 사람일지는 몰라도 아픈 사람들을 보면 그 고통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힘이 드는 나로서는 딸들이 의사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수술을 앞두고 하나마나한 생각을 했었다. 옆에 있던 남편은 딸들의 삶이 그저 평안하고 행복하면 그뿐이라는 내용의 말로 비슷한 동의를 한 것 같다.


오후 3시쯤 수술실 호출이 왔다. 드디어 골절된 손가락 뼈를 붙여주는 수술을 하러 들어갔는데. 수술 자체는 아주 간단하다고 하지만 둘째가 뱃속에 함께하는 나로서는 복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연하게 밀려오는 두려움, 수술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들이닥친 외로움, 우울감, 그리고 뱃속에서 놀고 있는 둘째에 대한 미안함…

‘엄마가 넘어져 다친 바람에 몸속으로 들어가는 낯선 마취약들을 느끼게 한 것이,

엑스레이를 통해 나오는 방사선을 막기 위해 무거운 프로텍터를 배 위에 올리게 된 것이..

봄아(태명), 엄마가 너무 미안해.‘


눈물이 눈알을 촉촉이 적시는 동시에 수술실에서 나 혼자가 아니라 둘째 봄과 함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면서 진심으로 봄에게 고마웠다. 이런 곳에 있게 해 미안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너와 함께여서 엄마는 덜 불안에 떨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봄은 태어나기 전부터 효도란 효도는 다 하고 있다. 건강하게 태어나기만 해. 엄마가 행복하게 해 줄게.라고 또 속으로 다짐하고 말았다. 세상에서 제일 지키기 어려운 약속일지도 모르나 너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받는 것이 많은 행복 중 하나라면 그건 이 엄마가 제일 잘하는 거라고.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둘째에게 그림책 읽어주다 폭풍 구강기로 집안 모든 물건들을 탐색 중일 때 내 책을 읽곤 하는데 이 날은 엄마책에 관심을 갖는 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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