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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Jul 01. 2023

딸이 미워질 때 읽어야 할 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 했었다.

 딸이 어제저녁부터 몸 전체에 두드러기 증상을 보였다. 처음에는 옷이 없는 팔 부분만 봐서 모기에 물린 줄 알았다. 그런데 모기 물린 것 같은 부분들이 자꾸만 눈에 하나둘씩 띄더니 옷을 벗겨 몸 전체를 보니 전체적으로 퍼져있었다.


 너무 걱정스러웠다. 간지럽진 않을까. 만약 알레르기 증상이라면 심하게는 목이 부어 숨 쉬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 상황까지 가면 안 될 텐데. 오늘 처음 시도한 이유식 재료가 문제였나. 팽이버섯을 처음 먹인 날이다. 저녁에 감자를 잘 먹기에 먹는 대로 줬다. 감자를 너무 많이 준 게 문제일까. 친정부모님이 선물로 주신 옷을 처음 입혀봤는데 옷의 촉감과 재질이 익숙지 않아서일까. 걱정, 후회, 자책이 번갈아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병원을 갈 수도 없는 시간이기에 우선 조금 지켜보기로 했다.


 오늘 아침, 남편이 일찍 출근을 했다. 씻고 나오니 마침 딸이 잠을 깨 우리 딸 잘 잤니, 아이 예뻐라, 볼뽀뽀를 하며 아침인사를 했다. 오늘의 첫 이유식을 먹이고 그림책도 읽고 장난감을 갖고 딸과 놀아주던 중 얼굴에 어제는 없었던 두드러기가 번졌고 팔과 다리, 몸 안 쪽 다른 부위에 있던 증상은 심해졌다. 자주 가던 소아과에 전화해 당일 오전 진료 예약을 잡고, 나갈 준비를 한 뒤 병원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많이 왔다. 딸을 아기띠로 안고 우산을 쓰고 버스 정류장에 갔다. 항상 남편과 시간을 맞춰 차를 타고 병원에 갔었던 터라 버스를 타고 가는 건 처음이었다. 딸이 아픈데 비까지 와 마음이 달았다. 춥진 않을까, 비를 맞진 않을까 하면서. 병원까지 가는 길을 어플로 다시 한번 확인하던 중 딸이 벤치에 앉아있는 대학생 언니에게 손을 흔들고 언니도 손을 흔들어주며 인사를 나누는 상황을 어플을 끄면서 알게 됐다. 마치 딸이 엄마 걱정하지 마, 괜찮아 하는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해 꽤 빨리 진료를 받았다. 과장님은 돌 전에 많이들 이렇게 두드러기를 치른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셨다. 그리고 처음 겪어서 알레르기 증상을 보인 것으로 의심이 되는 것들은 다 중지하고 한 달쯤 뒤에 조금씩 다시 시도해 보라고 하셨다. 증상을 완화시킬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 도착해 내리는데 짐이 많아 우왕좌왕하느라 우산을 바로 펴지 못했다. 잠깐이었지만 아픈 몸으로 비까지 맞게 해 딸에게 미안했다. 딸은 또 엄마 이 정도는 괜찮아하는 듯 내 품에서 잠시 깬 잠을 이어 잤다. 그런 딸을 토닥토닥 다독이면서 우산을 쓰고 비 오는 거리를 걸었다. 비를 안 맞게 해주고 싶었다. 내 팔과 가방은 젖더라도. 안 아프게 해주고 싶었다. 두드러기를 내가 가져갈 수 있다면.


 집에 도착해 두 번째 이유식을 먹인 후 처방받은 약을 먹였다. 딸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나에게 더 안아달라고, 놀아달라고, 함께 있자고 하는 듯 붙어 다녔다. 더 안아주고, 더 비행기 태워주고, 더 노래 불러주고, 더 웃었다.

 “OO아, 건강하게만 자라자. 아프지 말자. 엄마딸.”

 수차례 딸에게 했던 말이다.

 어제, 오늘 놀란 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다행히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두드러기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이미 자식들을 다 키운 선배 부모들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별 거 아닌 것에 호들갑 떨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간에 제일 중요한 건 오늘 딸에게 엄마로서 가졌던 마음이지 않을까. 무엇보다 딸의 건강을 바라고, 그러므로 딸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




 살다가 딸이 미워지는 순간이 온다면 이 글을 읽어야겠다. 딸의 건강만을 진심으로 바라던 이 날, 딸이  빨리 낫길 바랐고, 더 이상 조금이라도 아플 일은 없기를 바랐다. 이렇게 내가 딸에게 가졌던 마음을 생각하자고,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그 무엇도 아닌 내 앞에 있는 딸이라고. 다시 그 마음을 일깨워 어리석은 생각과 선택을 잘 흘러 보내자고.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미리 보내는 글이다.


*2023.6.29.(목)~6.30.(토) 양일 간 있었던 일에 대해 썼다. 하루 늦게 글을 올렸다.

*글 제목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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