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어머니의 방문
후덥지근한 기온 때문에 몸이 용광로가 된 것 같아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지요. 으레 내 시선은 건너편 그녀의 아파트를 응시하였어요. 그런데 그녀의 아파트가 어둠 속에서 정적에 휩싸여 귀신이 사는 집처럼 보였어요.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동시에 온몸에 활짝 열려있던 수만 개의 땀구멍이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금방 닫혀버리는 게 아니겠어요?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가운데 나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허둥대며 어쩔 줄 몰랐어요.
그런데 벽시계를 보니 저녁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고 미소를 지었답니다. 그녀의 운동은 정확히 저녁 8시에 시작해서 9시에 끝나 거든요. 오랜 관찰에서 터득한 나의 감각적 시간개념이 핵폭탄으로 뱃속이 초토화된 관계로 잠시 혼란에 빠진 게 틀림없었어요.
나는 다시 미끈거리는 거실을 미친놈처럼 팬티 바람으로 뛰며, 느끼한 얼굴의 가수 윤수일이 히트시킨 ‘아파트’란 노래를 신나게 부르기 시작했어요.
노래를 목청이 터지도록 부르고 나니까 속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는 듯했어요. 나는 폭포수처럼 흐르는 땀을 닦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습니다. 내가 비몽사몽 간에 거실 소파에서 일어난 시각이 밤 9시쯤 되었을 겁니다.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반쯤 감긴 눈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더니, 아이고, 이게 웬일이랍니까? 글쎄, 어머니와 시집간 바로 아래 여동생이 조카들을 데리고 문 앞에 떡하니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거기까지는 좋았어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나는 어머니 손에 들린 묵직한 물건을 받으려고 손을 내민 순간 여동생이 비명을 질러대는 게 아니겠어요? 나는 시원한 바람이 내 사타구니로 휘몰아치는 느낌을 받고서야 머리가 쭈뼛 서서 마치 고슴도치처럼 되고 말았어요.
그것도 잠시 나의 볼품없는 육신이 여인들 앞에 공개되었으니, 아무리 나를 낳은 어머니와 뿌리가 같은 여동생일지라도 경악하지 않겠어요.
나는 얼른 돌아서서 뛰어들어가 축축이 젖은 러닝셔츠와 반바지를 꿰고 나서 어머니에게 다시 인사를 드려야 했답니다. 아마 어머니는 나를 본 순간 억장이 무너졌을 겁니다. 안 봐도 뻔하죠.
나이 40이 되도록 장가도 못 간 아들이 불쌍하여 밑반찬을 만들어 찾아왔더니 아들이란 놈이 팬티 바람에 눈은 썩은 동태눈깔이 되어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문을 열어주니 어떤 어머니가 기가 막히지 않았겠어요.
어머니는 잔뜩 화가 난 얼굴이지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고 거실에 들어오셔서 내가 흘린 땀방울이며 여기저기 벗어 내팽개쳐진 옷가지며 제 마음대로 굴러다니는 술병들을 정리 정돈하시고 휑하니 나가버리시는 게 아니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장가도 못 들고 늙어가는 아들 때문에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을 어머니의 가슴속에 나는 휘발유를 들이붓고 말았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로 죽고 싶더라고요.
여동생과 조카들도 괜히 주눅이 들어 있다가 무슨 죄인들처럼 비실거리면서 내 눈치를 보더니 어머니 꽁무니를 따라 바람처럼 사라지더군요.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눌 길 없어 미친놈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거실을 뛰어다녔어요.
이유도 없는 분노가 그녀로 말미암은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창가로 다가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집은 여전히 암흑에 싸여 있는 게 아니겠어요. 나의 분노도 잠시였고 이내 그녀의 소식이 궁금해졌답니다.
밤 10시가 넘었으니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일찍 잠자리에 들거나 운동 후에 외출해서 아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산사에 가면 지겹도록 들을 수 있는 명상음악을 틀었어요. 그리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의 현재 서 있는 자리를 천천히 뒤돌아보기로 했지요.
심사숙고하는 가운데도 나의 시선은 자주 그녀의 아파트 베란다 쪽으로 이동하곤 했답니다. 명상에 잠기니 한쪽 모퉁이가 일그러진 달님이 창가로 내려와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더군요. 달님은 나에게 '이 멍청한 녀석아, 지금 뭘 하고 있는 게야?'하고 꾸지람을 하시는 거 같았어요.
세상에는 아직도 성(性) 혹은 섹스를 단지 자웅(雌雄)의 신체적 일부가 교접해야만 성립될 수 있다는, 지극히 구석기시대적 발상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새로 개발된 각종 하드웨어는 우주 시대를 달리는데 사람들의 소프트웨어는 선사시대에 머물러 있는 거죠.
요즘 일부 국가에는 동성애자(同性愛者) 간의 결혼이 허용되고 있고, 심지어 당당하고 늠름하던 남성 상징을 제거하고 여자보다 더 예쁜 여자로 거듭나는 중성(中性)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실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x 뭐'란 예쁜 여인이 있잖아요. 태국은 그런 부류의 중성들이 활개 치기 좋은 세상이지요. 그들을 상대로 해마다 미인 경연대회를 개최하여 거시기 잘린 가장 아름다운 여성 아닌 여성을 선발하여 만인이 부러움을 사게 하니 기가 막힌 요지경 속이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