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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부아빠 Jul 09. 2020

여행을 떠나요(2)

아빠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아이들이 묻습니다. 오늘 여수 밤바다가 슬퍼

밤새도록 자갈밭에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때문에 잠을 못 잤습니다. 캠핑도 처음이고 텐트도 처음이라서 바람에 흔들리고 파도소리에 뒤척이는 잠자리가 편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텐트 속에 켜놓은 전등 아래서 휴대폰으로 마음껏 게임을 즐기다 잠이 들었습니다. 텐트가 흔들려도 파도소리가 거세져도 아이들은 편안하게 잠을 잘 잤습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바다 위에 떠오르는 일출 앞에서 아침 기운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밤새도록 들은 파도소리가 귓속에 저장된 기분입니다. 아침에 거니는 해변가에는 어제들은 그 파도소리만 들립니다. 인적 없는 해변가를 혼자서 거닐어보았습니다.


아이들도 일찍 일어났습니다. 해변을 거닐면서 부지런한 바닷가 생물들을 구경합니다. 크고 작은 게들을 따라다니기도 하고 갯바위 아래에 붙어있는 고동을 수집하기도 합니다. 담아온 것들을 잘 씻어서 냄비에 담았습니다. 된장과 고추장을 적절하게 섞어서 국물을 끓였습니다. 캠핑용 버너에 밥도 지었습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챙겨간 오이지가 유일한 반찬입니다. 손바닥 반만 한 게 한 마리와 아이 주먹 한 줌의 고동을 넣고 끓인 국물은 제법 바다 맛과 향을 풍깁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즐겁게 아침을 먹습니다.


아이들은 아침을 먹고 섬의 풍경을 즐길 틈도 없이 텐트로 돌아가서 휴대폰으로 온라인 강의를 듣습니다. 엄마는 매일 아침마다 온라인 수업의 결과를 확인합니다. 캠핑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온라인 수업을 빠짐없이 듣겠다고 한 약속이 후회됩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휴대폰을 보고 있습니다. 뱃고동 소리와 파도소리보다 선생님의 강의 소리만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아이들에게 동영상 시청 속도를 빠르게 돌리라고 말했습니다. 강의 시청을 완료해야만 우리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5 혹은 2배속으로 강의를 모두 끝냈습니다. 텐트를 정리하고 짐을 챙겨서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들어오는 배를 타고 다시 여수로 가는 일정입니다. 여수에서는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습니다. 낭만적인 텐트 숙박은 추억으로 새겼습니다.


여수로 나오는 배에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캠핑 어땠어?"

텐트 치고 노는 건 좋은데, 놀러 와서까지 수업을 듣는 건 싫다고 말합니다.


여수 밤바다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습니다. 도미토리형 방을 잡았습니다. 큼직한 방과 이층 침대 2대가 나란히 놓여있는 방입니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가면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습니다.


저녁은 시내 식당을 찾아가서 먹기로 했습니다. 이곳저곳을 찾고 있는데, 아이들은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먹자고 나를 설득합니다. 집에서는 한 번도 사주지 않는 음식이 패스트푸드 음식입니다. 여행의 기분을 살리기 위해서 아이들과 함께 맥도널드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의 기분을 살려주려고 추가 메뉴를 더 주문했습니다.


즐겁고 풍족하게 먹고 나오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옵니다. 엄마의 이름과 전화 벨소리를 듣자마자 엄마가 무슨 말을 하실지 들리는 게 신기합니다. 엄마는 거기까지 가서 햄버거를 먹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는 것을 시작으로 아이들과 아빠를 돌아가며 혼을 냅니다. 구구절절이 다 맞는 말만 5분 동안 쉬지 않고 늘어놓습니다. 변명도 못하는 맞는 말들만 쏟아냅니다. 이럴 땐 딱 한마디만 반복합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요. 알았어요.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미안해요!"


아빠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아이들이 묻습니다. 오늘 여수 밤바다가 슬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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