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의 강력한 태풍이 상해에 왔다. 비행기 600편이 취소됐고 아침부터 비바람이 몰아쳤다. 커튼을 치면 1분마다 한 대씩 이륙하던 비행기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걸 삼킬듯한 폭풍이 지난 뒤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어느 때보다도 맑았다.
평소에 머금고 있던 한 톨의 먼지까지 태풍이 모두 가져간 듯 싶었다. 모처럼의 좋은 날씨 덕분에 아침부터 창가에 앉아 바깥 햇살을 느끼며 유다빈 밴드의 신곡 '그런갑다'를 감상했다. 음악 스트리머 차밍조와 함께 한 노래인데 가사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냥 '그런갑다'하고 넘어가자는 내용. 내용이 참 좋았다. 나도 뭐든지 '그런갑다'하고 넘길 수 있는 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달까.
'그런갑다'를 듣고 난 뒤 AI 추천으로 자동으로 다음 노래가 틀어졌다. 유다빈 밴드가 리메이크한 '좋지 아니한가'라는 곡이었다. 원곡도 좋지만 유다빈 밴드 특유의 느낌이 노래를 더 신나게 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 노래 가사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햇살을 충분히 만끽한 뒤에는 아침 독서를 했다. '빈틈의 위로'라는 책이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쓴 글이라 신뢰도가 높은 건지, 글에 적힌 부분들 중 공감 가는 게 많았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페르소나'에 자기 자신이 먹혀 '페르소나'라는 껍질이 너무 두꺼워져 있다는 말은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 같았다. 앞전에 썼던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 나와있는 내 생각의 파편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는 '페르소나'란 보여주기 식의 자신, 타인의 시선에 맞춰진 혹은 사회가 정한 규격에 맞춰진 나를 이야기한다.)
잠깐의 독서를 하고 나서 오후에 '난징동루'를 가보았다. 최고기온 33도. 진짜 햇볕이 말 그대로 쨍쨍 째는 무더위의 날이지만, 흐린 날 뒤에 보는 맑은 날이라 그런지 나가고 싶은 욕구가 넘쳤다.
난징동루 역시 10호선이라 롱바이신춘역에서 지하철로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난징동루의 첫인상은 정말 넓고 컸다. 사람도 셀 수 없이 많았다.(이때는 몰랐다, 국경절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란 걸) 해외에 나와서 좀 더 마음이 여유로워졌다는 핑계와 사실 다른 스케줄이 없다는 팩트로 천천히 하나씩 구경을 하며 지나갔다. 아이폰 16 출시에 맞춰 애플스토어에도 사람이 정말 많았고 M&M 스토어, LEGO, 나이키 어딜 가든 사람이 많았다. (다시 말하지만, 애교 수준이었다.)
사람을 피해 무작정 골목으로 빠져보기도 했다. 골목으로 50m도 안 갔는데 관광지 느낌이 아닌 중국 특유의 길거리 느낌이 났다. 장사가 전혀 안될 것 같은 허름한 가게들이 이어져있고, 길가에는 오토바이들이 주차돼 있다. 상해에는 도대체 몇 대의 오토바이와 电动车(디엔동처)가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상해에 거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외지인이다 보니 배달 일을 굉장히 많이 하신다. 아침에 출근하며 서기사님께 여쭤보니, 정말 쉬지 않고 일을 하면 한 달에 200 정도는 벌 수 있다고 한다. 한국 기준으로는 큰돈이 아니지만, 중국 시골에서 벌 수 있는 돈과 비교하면 큰돈이라고 한다.
아무튼 다시 난징동루로 돌아와 더울 때에는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겼고, 배고프면 길거리 음식을 즐겼다. 아! 저녁에는 중국 와서 처음으로 마사지도 받았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안 받아 봤는데, 왜인지 외국만 나오면 돈이 아깝지 않다. 요즘에는 한국에도 프랜차이즈도 늘어나고, 어플도 생겨 합리적인 곳이 많은데 이유는 모르겠다.
이렇게 일상에 관한 글을 남기다 보면 깨닫는게 있다. 하고 싶은 것을 망설이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그저 온전히 하루를 즐길 수 있다는 것, 명절에 외국에 혼자 나와 있어 외롭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도
너무너무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