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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구 May 18. 2023

DAY4. 노르망디 860킬로

에트르타, 옹플뢰르, 몽생미셸

오늘은 북쪽 사람의 땅이라는 노르망디 투어다. 

석회암 바위가 파도에 부딪쳐 만들어진 코끼리 모양의 암석으로 유명한 <에트르타>와 쎄느강 입구에 있는 오래된 관광지 <옹플뢰르>를 거쳐 한국의 여행객들에게 유명한 <몽생미셸>을 보고 돌아오는 일정이다.


아침 7시 출발해서 다음날 새벽 2시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시간도 시간이지만 이동거리도 만만치 않아 860킬로 정도라 한다. 서울에서 출발해 대전 찍고 대구 들러 점심 먹고 부산에서 구경하고 저녁 먹고 돌아오는, 전 세계에서 한국인만 할 수 있는 여행코스 되겠다. 일행은 우리 부자, 원준이 또래의 딸과 함께 온 모녀, 그리고 함께 여행 온 여학생들, 이렇게 8명이다. 차량은 벤츠 마크가 달린 오래된 승합차인데 운전석 옆자리가 불편해서 고통 분담차원에서 이동 때마다 자리를 옮겨가며 앉아 달라고 부탁받았다.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 상당히 박식하고 달변가였다. ‘에트르타’로 가는 2시간 반 동안 프랑스의 역사, 프랑스가 로마의 가장 첫 식민지가 되어 로마의 영향을 받게 된 것, 영국과의 100년 전쟁의 배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어떻게 프랑스에서 죽게 되었는지, 모나리자가 프랑스 소유가 되었는지 등을 들으며 갔다.




유럽은 고대에는 바다였다고 한다. 죽은 물고기가 압력을 받아 석회암이 되었고 석회암이 열과 압력을 받으면 대리석이 되는데 톱으로 쓸면 쓸리는 성질 때문에 유명한 건축물과 조각이 많게 된 배경이라고 한다. 한국의 화강암은 그런 성질이 없으니 조상을 원망하지는 말자.


‘에트르타’는 석회질로 이루어진 바위가 대서양의 파도와 부딪치며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그 특이한 형상들 중 아빠 코끼리, 엄마 코끼리, 아기 코끼리 형상의 암벽으로 유명하다. 19세기 예술가들이 특이한 형상의 바위를 보며 작품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물랑루주의 ‘프랜치 캉캉’과 프랑스 희극의 창시자 오펜바흐가 영감을 받은 곳이라 하고, 괴도 루팡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의 생가를 지나쳤다.


바닷가 언덕 위에 작은 성당이 인상적이었다.




이어 50분 걸려서 도착한 곳은 쎄느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곳, ‘옹플뢰르’다. 예전부터 무역이 성행한 덕에 사람이 왕래가 많은 관광도시다. 도시는 16세기 이전의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눠져 있으며, 내 눈에는 신도시도 구도시다.


노르망디 칼바도스 지방의 사과가 술독에 빠지면 칼바도스가 된다. 코냑이 포도로 만든다면 칼바도스는 사과로 만든다. 발효하지 않은 사과원액과 40도의 칼바도스를 혼합해 오크통에서 2년 이상 숙성해 만든 17도의 술 뽀모로도 유명하며, 사이다의 원조인 시드르와 크레페도 이곳이 원조라고 한다. 가게 한 곳에서 20년 산 깔바도스와 뽀모를 시음했다. 깔바도스는 깊고 뽀모는 사과의 풍미가 느껴지지만 달다.


시몬스 침대 광고 음악으로 유명한 짐노페디 1번의 작곡가 에릭사티의 고향이 이곳이라 한다. 잔잔하며 테크닉이 없는 사티의 음악은 19세기에 통하지 않아 고전을 많이 했다고 하고 파리음악원 다닐 때 인생 절친인 ‘끌로드 드뷔시’를 만나 그의 덕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나보다. 


모네의 스승인 외젠부딩의 고향이기도 한데, 그와 모네가 같은 곳을 보고 각각 그린 그림이 패널에 있어 이를 보는 재미도 독특하다. 아름다운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모네가 그린 ‘성-카트린 성당’의 패널이 보인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성당인 카트린 성당은 미사 중이라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잠시 묵상을 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바닥 쪽으로 쭉 늘어선 카페 중 처마 색깔이 맘에 드는 한 곳의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햇살이 너무 뜨겁고 강렬하다. 원준이는 노르망디 스타일의 햄버거를 선택하고 나는 까르보나라를 주문했다. 맛있었다. 나는 조금 색다른 느낌을 위해 가방에 챙겨 둔 볶음 고추장에 살짝 비벼서 까르보나라를 먹었다. 원준이가 엄청 눈치를 줬지만 한국의 아저씨는 용감하다. 그렇지만 들키지는 않았다. 빈 접시를 치우며 저 동양인은 까르보나라에 케첩을 같이 먹었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


가장 오래된 목조 성당, 성 카트린 성당 앞 


다시 두 시간 정도 차를 타고 몽생미셸에 도착한 건 오후 4시쯤이다. 부활절 하루 전이어서 가는 곳마다 사람이 바글바글했지만 이곳엔 정말 사람이 많았다. 로마-바티칸, 야고보 성인이 있는 스페인의 산티아고와 함께 중세 유럽의 3대 성지순례 코스 중 한 곳이었던 곳이다.


몽생미셸은 미카엘 성인의 산이라는 뜻이다. 바다로 둘러 쌓인 95미터의 산이고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서 하루에 두 번 밀물과 썰물이 있는데 고저차가 5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모래톱을 통해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서 밀물 때 고립되고, 썰물 때 물이 빠지면 육지와 연결된다.


1,300년 전에 성당이 지어져 다양한 부침을 겪으며 천년에 걸쳐 증축과 개축을 하며 오늘에 이르렀고, 섬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성 같아 보인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영감을 주었고 디즈니 로고도 이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700년대 어느 주교 신부님의 꿈속에 성 미카엘 대천사가 나타나 ‘바다 위에 성을 쌓아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주교는 너무 뜬금없이 무시를 했고, 세 번째 꿈에선 손가락으로 빛을 쏘아서 주교의 이마에 상처를 냈다고 한다. 화들짝 놀란 주교는 정말로 바다 위에 성당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성당의 어느 벽면 위에 그 꿈에서 받은 손가락 빛을 상징하는 홈을 만들어 두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한 시간 반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마을로부터 시작해 수도원을 한 바퀴 둘러봤다. 인상적이었던 공간과 끝없이 펼쳐진 노르망디의 모래바다 등 멋진 뷰 포인트가 여러 곳이 있었지만 이제는 반만 남은 벽화의 벽면이 기억이 남는다. 가운데 인간의 영혼을 상징하는 해바라기가 있고 오른쪽 반쪽에 죽은 자 셋이 있다. 이제는 없어진 왼쪽 반쪽엔 기사가 있다고 한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말을 하는 장면이라고 하는데 무슨 말을 했을까? 나중에 죽은 나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할까를 생각했다. 이번 여행에서 이 질문을 계속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말을 하는 장면


수도원의 수사님들이 소와 양가죽에 한 자 한 자 새긴 성서를 통해 중세 유럽 기록과 지성의 보고였던 이 수도원은 이제 한국 관광객들에겐 야경으로 더욱 유명해져, 우리가 간 날도 해가 지고 어둑어둑 해지며 성당과 마을에 불이 켜졌을 때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의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 트렌디 한 민족이다.


가이드가 준비해 온 휴대용 조명까지 동원해 몽생미셸의 야경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왔다. 뒤로 젖혀지지 않는 차량의자에 오래 앉아 오니 몸에서 힘들다고 이런저런 신호를 보낸다.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옆에 앉은 딸에게 ‘가이드님 빨리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차 샀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2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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