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투어, 로마의 마지막 저녁
어제의 날씨 생각에 긴팔 셔츠와 얇은 카디건을 입었는데 날씨가 쨍쨍하다. 선글라스가 역할을 할 차례다.
집 근처 카페에서 햄버거를 주문했다. 칼로리 폭탄의 햄버거가 나왔다. 토마토가 조금 있긴 했지만 야채도 없이 두툼한 소고기 패티 두 장에 치즈가 흘러넘친다. 사진에 오븐에 구워 반질거리는 빵과 가운데 거무스레한 패티 사이에 흘러내린 노란 치즈의 색감에 이끌려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크다. 가운데를 자르니 안에 베이컨까지 있다. 이걸 원한 건 아니었는데 오후에 많이 걸을 거고 어제 자쿠지에서 일어서는데 살짝 현기증을 느꼈기에 좀 먹어도 되겠다. 음식을 잘 남기지 않지만 햄버거는 좀 남겼다.
로마 시내 투어는 스페인 광장에서 출발해 트레비 분수를 지나 판테온을 보고, 캄피돌리오 광장과 로마 관광의 하이라이트 ‘포로로마노’ 지역과 콜로세움까지다.
판테온은 가장 높은 석조건물로 서양건축사에 불후의 명작으로 꼽힌다. 기원전 27년에 올림푸스의 모든 신들을 위해 지어졌다가 5 현제 시대에 지금의 석조 건물로 만들어 19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원래는 입장료가 있다는데 무료로 내부 입장이 가능했다. 본체는 철근 하나 없이 작은 벽돌을 켜켜이 쌓아 두꺼운 벽을 만들고 그 위에 커다란 돔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두 천재가 이 돔을 연구해서 브루넬리스키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베드로 성당의 돔을 완성했다. 그 시대의 또 다른 천재 화가 라파엘로도 이 판테온에 묻혀 있다. 정면의 여러 개의 기둥은 그 하나의 무게가 50톤에 달하는데 이집트에서 코끼리 등에 실려 옮겨왔다는 데, 그 시대의 건축가들의 집념도 대단하지만 이에 동원된 사람과 코끼리를 생각하니 딱하기도 하다. 공포였을까?
판테온 주위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고, 건물의 외관을 보려고 건물의 옆쪽으로 갔다가 첼로 소리에 이끌려 가니 판테온의 한산한 뒷골목에서 거리의 음악가가 연주를 한다. 다시 앞쪽으로 오니 음악가보다 아저씨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양반이 카페테라스의 손님들을 보고 아코디언 반주에 노래를 한다. 그 앞에 동전을 넣을 모자가 없어 의아하다 했더니 노래가 끝나고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컵을 꺼내더니 손님들 자리를 돌며 동전을 청한다.
로마의 배꼽이라는 베네치아 광장을 지나 캄피돌리오광장 쪽으로 걸었다. 로마의 골목길은 한결같이 검은색 네모난 돌로 되어 울퉁불퉁하다. 세월이 오래되어 차가 다니는 바퀴 쪽은 꺼져 있고 편편한 곳이 없다. 모퉁이의 훼손된 곳을 보니 그 검정 돌이 납작한 모양이 아니고 치아처럼 사각뿔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사각뿔 돌을 박아 마차나 차량의 무게와 진동을 흡수해 길가 건물에 충격을 안 주고 비가 올 때 배수가 잘 된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정비는 좀 하지, 세계의 관광객이 쓰고 간 그 많은 돈은 돌 틈 사이로 흘러내린 건 아닐 테고.
2000년 전 로마의 행정, 경제, 종교의 중심지 포로로마노,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이제는 황제의 개선문과 몇몇 남은 기둥들만 그때의 영화를 증명하고 있다.
그 고대 로마의 심장부 끝에 콜로세움이 있다.
네로가 죽은 후 평민 출신의 황제가 민심을 얻기 위해, 그리고 민심을 정치 밖으로 돌리기 위해 콜로세움을 만들었다고 한다. 로마시내 한복판에, 그것도 네로 황제의 연못을 메워 개인의 쾌락이었던 공간을 시민의 기쁨으로 만든 것이다.
서기 72년에 시작해 기중기와 콘크리트 등 당시로는 최첨단 발명품과 건축재를 사용해 불과 8년 만에 둘레가 500미터가 넘고 관중석의 높이도 50미터가 넘는 이 거대한 석조 건축물을 완성했다. ‘아치’ 구조를 도입해 가벼우면서도 강한 구조물로 벽 내부에는 청동 뼈대를 넣어 내진 설계가 되었고 옥상에는 밸라리움이라는 햇빛을 가리는 차양막을 설치했다고 하니 고대 로마인의 건축술뿐만 아니라 정신적 부지런함이 감탄스럽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째 해외여행 중이라는 젊은 부부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남자가 사진을 찍는 동안 그 아내는 ‘잘 찍어드려, 하나 둘 셋’ 신호를 주는 등 부부 합작의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콜로세움에서 50분 정도를 걸어 숙소가 있는 ‘나보나 광장’으로 갔다.
꼬리찜과 비슷한 요리가 있다는 레스토랑에서 로마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했다. 식전주를 먼저 한잔하고 샐러드와 메인, 꼬리찜과 어울리는 추천 와인, 후식으로 티라미수 케이크를 먹었다.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 꼬리찜은 번잡하기만 했다. 대신 티라미수 케이크가 훌륭했다. 티라미수의 원조가 피렌체라고 하니 이탈리아가 원조라 해도 되겠다. 부드러운 케이크 위에 초콜릿 가루가 듬뿍 뿌려져 있다. 이태원 힐튼호텔에서 경리단 쪽으로 내려오다 티라미수로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몇 번 먹어본 게 전부라 티라미수에 대한 인식도 그 맛으로 고정되어 있다가 오늘 원조의 맛으로 업데이트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광장으로 나오니 달 빛이 환하다. 어제의 그 폭우가 지금 내리면 그 비를 다 맞아도 행복할 것 같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