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8월 21일
2025년 8월 29일
겨울에 태어난 태양인인 나는 여름이 되면 너무 힘들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고 조금만 밖에 있어도 금세 더위를 먹곤 한다. 이런 내가 운동도 하니 몸의 열이 식지 않아 하루에 몇 번씩 샤워를 하고 있다. (일기를 그동안 못 쓴 것에 대한 핑계를 장황하게 쓰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여름은 나에게 피하고 싶은 계절인데, 올여름이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여름 중에 가장 시원할 여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선 마음이 무거워진다. 작심삼일 일수도 있지만 분리수거도 더 꼼꼼하게 하고, 사고 싶은 옷도 장바구니에서 슬며시 지워본다. 버리고 싶은 물건도 일단 당근에 올려보고, 택배로 시킬 물건도 그냥 장바구니를 들고 가서 장을 봐 본다. 우리 아이들에게 다가올 여름이 조금이라도 덜 더웠으면 하는 바람에.
처서가 지나면 좀 나아지려나 했는데 올해는 처서매직도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첫째 이솔이는 나를 닮아 더위를 많이 타는 것 같다. 며칠 전 숲 체험을 하러 가서는 30분도 안돼서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는 돌아왔는데, 자기는 너무 더워서 못하겠다고 했단다. 다음 날 아침에 좀 선선해졌길래 놀이터 가겠냐고 물어보니 너무 더워서 바깥에 나가기 싫고 집에서 평화롭게 놀고 싶단다. 반면에 아기 해솔이는 '나가요 병'에 걸려서 하루에도 몇 번씩 바깥에 나가고 싶다고 난리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나갈 것 같으면 졸졸 쫓아다니면서 외출할 때 메는 가방을 질질 끌고 온다. 일단 밖으로 나가면 집에 안 들어온다고 떼를 부리는 해솔. 밖에 나가서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모든 동물들에게 '멍멍'이라고 하면서 포인팅을 한다. 밖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해솔이.
(집 앞 화단에 핀 꽃 한 송이에도 즐거워하는 해솔이. 통통한 손으로 꽃잎을 만지는 모양이 너무 귀엽다.)
날씨가 얼른 시원해져야 우리 해솔이를 데리고 공원도 가고 산책도 할 텐데. 집에만 있으니 해솔이는 떼보가 된다. 언니 하원하기 전에는 밖에 나가자고 징징. 하도 자지러지게 울길래 10킬로 넘는 통통이 해솔이를 아기띠에 메고 산책을 나섰는데, 집으로 오니 더 심하게 운다. 맛있는 과자도 치즈도 할머니의 어부바도 통하지 않는 강경한 울음에 친정엄마와 둘이 큰 한숨을 쉬었다.
친정엄마가 분명 아기 지은이는 이렇지 않았다며, 해솔이는 누구를 닮아 이렇게 울보에 떼보냐고 했는데 엄마의 기억이 미화가 되었나 보다. 친정 엄마의 육아일기에 적힌 '떼보 지은이'라는 선명한 글자. 떼보 해솔이는 엄마를 닮은 것이 분명하다. 아기 지은이는 떼보였는데, 그런 떼보 지은이 마저 사랑스럽게 기억하는 엄마의 사랑이 기억의 왜곡을 만들어냈나 보다.
해솔아. 엄마도 우리 떼보 해솔이를 사랑해. 떼를 부리는 게 우리 해솔이가 그만큼 자기 생각이 커지고 자랐다는 증거겠지. 얼른 이 여름이 지나가고 시원한 가을이 와서 우리 해솔이가 바라는 바깥 산책을 마음껏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건 비밀인데, 가끔은 네가 입을 크게 벌리며 울 때마다 동그랗게 벌린 입과 옥수수처럼 올라온 여섯 개의 이가(이제 곧 7개가 될 것 같은) 귀여워서 바로 안 달래고 쳐다볼 때도 있어. 이솔언니 때는 언니가 앙~하려고 하기만 해도 바로 안아줬는데 말이지. 그래서 해솔이가 언니보다 더 크고 세게 잘 우는 것 같기도 해. 우는 것도 귀여운 해솔이. 하지만 너무 자주 울지는 말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