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9일
이솔이가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을 다니면서 새롭게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소풍 도시락' 싸는 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압박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면 너무 유난스러운 엄마라고 하려나. 그래도 엄마의 사랑을 잘 표현하는 게 예쁜 소풍 도시락이라고 굳게 믿고 있어서 이솔이의 마음에 들 수 있게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어본다. 원래는 꽃 모양 비엔나 소시지도 준비하고, 케첩으로 발그레한 볼도 꾸며주려고 했는데 내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둘째 해솔이가 일찍 일어나 방해를 하는 바람에 준비하지 못했다. 인스타그램의 예쁜 도시락을 이리저리 보면서 내가 쌀 수 있는 쉬운 난이도의 디자인을 미리 캡처해 두고, 쿠팡으로 깜찍한 도시락 픽과 예쁜 유산지를 미리 주문했다. 호불호가 확실한 이솔이는 도시락에 넣을 과일도 정해준다. "엄마! 밥은 노란밥 말고 하얀밥(잡곡밥 말고 흰 밥)으로 해주고, 과일은 내가 좋아하는 단감이랑 키위 넣어줘"
준비물 : 김밥 김, 도시락 픽(코스프레 도시락 픽), 유산지, 꼬마유부초밥, 과일
이솔이의 요청대로 단감이랑 키위의 껍질을 깎고, 샤인 머스캣과 블루베리도 몇 개 추가해 준다. 도시락 픽을 꽂아주는데 미끌거려서 예쁘게 잘 안 꽂아지고, 일찍 일어난 해솔이는 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입을 벌리고 있다. 블루베리랑 키위를 대충 입에 넣어주고 과일 칸을 쌓았는데 벌써 시간이 10분이 흘러있다. 이럴 수가. 급하게 밥에 간을 한다. 소금 촵촵, 참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밥을 섞어 주먹밥 모양으로 만들어준다. 유부는 물기를 빼서 한쪽에 놓고 주먹밥을 넣어준다. 여기까지 했는데 이솔이와 남편이 기상했다. 이솔이도 소풍 가는 날이라고 일찍 기상. 조용히 도시락 싸는 건 포기. 이솔이까지 합세하여 아기 새 두 마리가 주방을 왔다 갔다 한다. 입에 하나씩 넣어주고 유부초밥도 만들고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귀여운 표정을 만들어 줄 차례. 김밥 김으로 모양을 내어 조심스럽게 얼굴 표정을 만들어준다. 집게로 조심스럽게 표정을 올리는 내 모습만 보면 마치 미슐랭 식당에서 마무리를 하는 스타셰프 못지않게 진지하다. 드디어 완성!! 이솔이에게 완성본을 보여주니 마음에 든다고 좋아한다. "엄마 최고예요! 잘 먹을게요" 이 한 마디에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둘째 해솔이는 언니의 완성된 도시락에 손부터 먼저 갔는데, 뚜껑을 닫아버리자 오열하기 시작한다. 밥을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완성하기도 전에 간을 보느라 바쁜 두 아기 새들 때문에 남편은 딱 한 개만 맛봤다.
별거 아닌 도시락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싸주고 싶었던 건 어릴 적 내가 받았던 엄마의 도시락의 따뜻한 기억 때문이다. 온갖 템으로 도배된 나의 도시락과는 달리 엄마의 도시락은 엄마만의 정성과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도시락 통을 꺼내기 전 늘 예쁜 색깔로 묶여 있던 리본. 리본을 푸는 그 시간이 마치 선물 포장을 푸는 것과 같이 설렜다. 도시락안에 번쩍거리는 유산지에 담긴 유부초밥과 김밥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엄마표 샌드위치들. 엄마의 도시락을 비울 때마다 맛있는 밥과 더불어 엄마의 사랑덕에 배가 불렀다. 예쁜 도시락을 친구들에게 보여줄 때마다 괜히 으쓱했던 어린 나. 이솔이에게도 그 행복한 기억이 대물림 되기를 바라며. 소풍날에 크게 빨간색 별표를 쳐 놓고 마치 시험을 치는 아이처럼 일찍 일어나 불태운 아침. 유치원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마 도시락이 최고였다며, 싹싹 긁어먹었다며 감사인사를 해주는 이솔이. 이 맛에 도시락을 싸나 보다. 조만간 예쁜 도시락 싸서 가을 소풍을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