痛症 (아플 통, 증세 증)
창 밖이 아직 어슴푸레한 걸 보니 아주 이른 새벽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 지면 항상 몸에 어떤 문제가 있곤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금방 잠에 드니까 난 대수롭지 않게 내 귀여운 고양이가 자는 모습을 확인하려고 잠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몸 위로 묵직한 쌀 가마니를 얹은 것 마냥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깻죽지부터 팔꿈치까지 강하게 전기가 오른 것인지 두 팔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평소 구깃구깃하게 자는 버릇을 탓 하고 싶지만 당장 전해질 감각에 대비해야 했다. 왼 팔을 천천히 베개 밑에서 빼내자(왜 팔이 베개 밑에 들어가 있냐고 내게 묻고 싶다) 익숙하고 강렬한 통증이 고개를 들었다.
왼팔의 통증을 인지하자 마자 오른팔의 통증도 나 여기 있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잠 든 고양이 두 마리 옆에서 몰래 비닐봉지를 바스락거리다가 두 고양이한테 들켜버린 것 같았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듣자 마자 언제 잠 들었었냐는 듯 우다다다 달려오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나 양 팔의 고통은 평범하지 않았다. 아침까지 자고 나면 많이 나아질 거라 기대했는데 해가 뜨고 난 뒤에는 더욱 맹렬하게 아파왔다. 휴대폰조차 들어올리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통증의 원인을 금방 생각해냈다. 어제 실내 암벽등반장에서 마무리 운동으로 근력운동을 한 것이다. 간단하게 하체와 복부, 상체 세 가지 동작을 했는데 그 중 상체 운동이 제일 힘들었다. 하지만 필라테스와 요가에 투자한 시간이 헛되지 않았는지 목표했던 개수를 완성했다. 80퍼센트 정도 했을 때 ‘포기할까? 포기해야 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다!’라는 밈이 생각나서 마지막 ATP까지 쥐어짜버렸다. 그리고 오늘 새벽부터 이 고통에 시달리는 중이다.
적당함과 심함 사이의 근육통은 신체적 한계에 도전했다는 뿌듯함을 선사한다. 그래서 몸은 살짝 불편하더라도 아주 경쾌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아주 심한 근육통은 하루를 파괴한다. 초등학교 때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수련회를 다녀오면 근육통으로 몸살을 앓곤 했는데 그 때 이후로 처음 겪는 극심한 근육통이다. 관절도 말랑말랑한 유년기 시절에는 한나절 앓고 나면 다시 통통 튀어 올랐지만, 주민등록증의 증명사진도 10년이 지나버린 지금은 그게 안된다. 나는 오늘 세수도 제대로 못한 채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까지 아플 만큼 무리해서 운동을 한 것 같지 않은데 이게 무슨 일이람. 김숙 씨가 서른 여섯살이면 돌도 버석버석 씹어 먹을 나이라고 했으니, 최소 5년 동안은 괜찮아야 하는데 벌써 이러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수긍도 하게 된다. 그렇다. 2020년 코로나 시국, 일일 운동량이 현저히 떨어졌다. 알고는 있었는데 오늘 1차원적으로 세게 통증을 겪고 나서야 이마를 치며 바닥에 떨어진 체력을 돌아본다. 실내 클라이밍 두 코스와 코어운동 십 분에 이리 너덜너덜해질 몸뚱아리로는 작은 일도 제대로 못 할 텐데 말이다. 오늘을 잊고 또 체력을 낭비해버리면 그 땐 시국 탓도 못 할 것이다. 이렇게 글로 적어서라도 서른 여섯 살의 내가 돌을 버석버석 씹어먹을 수 있길 도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