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ignificant others)라는 말을 ‘90년대 초반 미국에서 공부할 때 처음 접했다. 파티 초청장에 배우자나 SO를 데려와도 좋다고 쓰여 있었다. 같이 살고 있는 이성이나 동성의 친구를 데려 와도 좋다는 이야기로구나 하고 눈치 빠르게 알아들었다.
최근에 심리학 책을 읽다가 이 표현을 다시 만났다. ‘의미있는 타인’이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영어로 접했을 때와 느낌이 많이 달랐다. 나를 일관성있게 지지해 주는 사람, 나에 대한 평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 진정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 강한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고 삶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주고받는 사람을 뜻했다.
코칭을 하면서 고객에게 리더십 스타일을 돌아보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강한 성격으로 동료와 부하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고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일의 책임 여부까지 애매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A상무님의 커리어로 영화를 만든다고 해 볼까요? 어떤 영화가 될 거 같으세요?”
A상무는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무협영화지요. 별 볼일 없는 청년이 각고의 노력으로 무술을 연마하여 고수가 되는 영화가 될 겁니다.” 그는 자신이 임원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는 형편없는 사원이었다고 했다. 돌아보니 참 많이 컸다고 하면서 멋쩍게 웃었다.
“영화의 중요한 등장인물은 누구일까요? 주연인 A상무님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준 캐릭터는 누구입니까?”
“제 커리어에는 무협지에 나오는 사부님은 물론 사형과 사제와 같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A상무는 지금의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대리, 과장을 거쳐 임원이 될 때까지 좋은 상사와 동료를 여러 사람 만났다. 특히 생각나는 사람들은 사원이나 대리 시절에 일을 많이 가르쳐 주었거나 같이 일하면서 성과를 냈던 상사와 선배라고 이야기했다.
“그분들이 지금 상무님에게 의미가 있었듯이 상무님은 동료와 부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요?”
A상무는 표정이 엄숙해지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의 부하 직원들은 A상무의 강한 리더십 스타일과 업무에 대한 높은 기대 수준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었다. 최근 핵심 부서의 팀장이 이직을 하기도 했다.
우리의 삶에는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 부모님의 영향이 클 것이다. 친구도 있고 직장 동료도 있다. 오랜 기간 관계를 맺은 사람만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 몇 달을 같이 일했어도 평생의 멘토로 생각하고 싶은 선배도 있다. 길에서 마주 친 사람의 한 마디가 평생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반대로 내가 영향을 주기도 한다. 회사를 떠나는 환송회 자리에서 술 한 잔 들고 찾아 온 어느 팀장이 일하면서 내게 정말 많이 배웠다고 했다.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어 보았다. “대표님이 ‘리더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보여 주는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팀원들 때문에 화가 날 때면 이상하게 이 말씀이 생각나네요.” 생소했다. 처음 들어보는 말 같았다. 내가 그렇게 멋진 말을 했다는 말인가.
노래 가사처럼 ‘너에게 나는, 나에게 너는’ 의미가 된다. 사람들은 누가 내게 의미있는 타인인가는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남에게 의미있는 타인이 되고 있다는 건 잘 느끼지 못한다. 모르는 새 나는 누구인가에게 의미가 되고 있다. 언제 ‘의미있는 타인’이 될지 모르니 순간순간이 소중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