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업무평가 해야 하는데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겠어.”
“넌 사업팀이니까 매출 실적 같은 거 쓰면 되는데 뭐가 어려워?”
“그런 숫자로 된 거 말고 말로 써야 하는 게 있어. 내 강점이나 노력한 점, 부족한 점 같은 거 쓰라는데 어떻게 써야 돼?”
“아, 그런 거는 무조건 잘 했다고 해. 하하하하하...”
“엉?”
“무조건 빵빵 질러! 최고라고 해.”
“그래도 되는 건가? 괜찮을까?”
“너 자신에 대한 네 생각을 쓰는 거니까 괜찮아.”
“그래도... 왜 그렇게 써야 하는 건데?”
“니네 팀장님이 평가를 할 때 뭐부터 하겠니? 직원들 자기평가부터 읽어 본다구. 거기서 인상이 결정되는 거야. 그러니까 쎄게 써야지.”
“팀장님이 내가 일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쓰면 어이없어 하지 않을까?”
“딸아... 평가자료 작성은 서류로 하는 협상이나 마찬가지이고 협상은 심리전이야. 파는 사람이라면 처음 부르는 가격을 높게 불러야 하는 법이야. 평가는 너를 파는 거야.”
“그래도...”
“가격을 높게 부르면, 그러니까 네가 평가한 게 팀장님 생각과 차이가 크다고 해 보자. 그러면, 팀장님은 심지어 자기 생각이 틀렸나 하고 자신의 판단에 의심을 갖게 될 수도 있는 거야.”
“그럴 수도 있겠네.”
“네가 애쓰고 노력한 걸 네 입장에서 써 봐. 예를 들어서, 업무계획에 애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일을 하느라고 원래 네 업무에 차질을 주었으면 그랬다고 써. 그건 변명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설명하는 거야. 그런 거 충분히 고려하는 팀장들 별로 없어. 허허허...”
“양식이 그렇게 길게 쓰게 되어 있지 않어.”
“칸이 좁으면 뒤에다 한 장 더 붙여서 쓰면 되지.”
“무슨 얘기야, 평가 시스템에 입력하는데.”
“참, 아빠가 라떼 얘기하는구나. 그럼 별도로 이메일로 보내.”
“아빠도 그렇게 했어?”
“그럼 아빠는 평가표 뒤에 한 장 더 붙여서 냈지.”
“그래서 평가 잘 받았어요?”
“그럼. 그때 아빠 부장님이 자기도 잊고 있었던 게 있었는데 잘 알려줬다고 했어.”
“알았어요. 그렇게 해 볼게요.”
(일주일 후)
“아빠, 팀장님하고 평가에 대해서 면담한대. 왜 그런 거까지 하는지 몰라. 팀장님 하고 마주 앉아서 무슨 얘기를 해.”
“니네 회사 평가제도가 참 제대로 됐구나. 평가면담 하지 않는 회사도 많은데.”
“일 잘 했다는 걸 팀장님하고 얘기하는 거 불편하다구.”
“자기평가에 뭐라고 썼는데?”
“아빠가 얘기한 것처럼 잘 했다고 썼지, 헤헤헤... 그리고 목표 미달한 건 설명도 하고.”
“그래. 그런 얘기를 구체적으로 팀장님하고 나눌 수 있으니 좋은 기회지.”
“팀장님이 무슨 얘기를 할지 잘 모르겠어.”
“일단 ‘수고 많았다.’고 하실 거야. 잘 한 일에 대해 칭찬하실 거고. 그 다음에는 네가 잘 못했다고 생각하는 거, 더 노력했으면 하는 거를 얘기하실 거야. 마지막으로 팀장님이 도와주어야 하는 거에 대해 물어볼 거고.”
“나는 뭐라고 얘기해야 돼?”
“칭찬에는 감사하다고 하고, 잘 못했던 점이나 노력할 점을 이야기할 때는 그냥 열심히 들어.”
“그냥 들으면 되는 거네.”
“팀장님이 도와 줄 일이 뭐냐고 물으면 팀장님이 고쳤으면 하는 거나 회사 제도 같은 걸 조심스럽게 잘 말씀 드려.”
“그게 어렵지.”
“조심할 건, 니가 고쳐야 할 점에 대해 팀장님이 애기할 때 맞받아서 회사의 방향이나 팀장님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 어쩌구저쩌구 얘기하진 마. 평가하는 사람 무지하게 짜증난다.”
“왜? 얘기하면 안 되나?”
“네 의견을 물을 때 얘기하라는 거야.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해서 얘기할 때 맞받아서 그런 얘기를 하면 핑계로 들릴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겠네.”
“두 가지를 명심하라구. 첫째, 평가는 팀장이나 회사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다. 둘째, 그래서 평가와 의견 제시는 명확히 분리한다.”
“그래도 팀장님이 나에 대해서나 상황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거는 어떻게 해?”
“상사가 오해하고 있는 게 있으면 잘 설명해야지. 나도 문제지만 회사도 문제라고 하는 건 설명이 아니야.”
“넷! 알겠습니다.”
“평가 잘 받아서 성과급 받으면 좋은 데서 저녁 살 거지?”
“아번님 좋아하시는 순댓국 사겠습니다. 킥킥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