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로 승진했다는 걸 처음 실감하신 게 언제입니까?” 첫 번째 코칭에서 박 코치가 김 대표에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화장실에 갔을 때입니다.”
대표로 근무하기 시작한 첫 날, 출근 후 김 대표는 한두 시간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방을 나왔다. 화장실 입구에서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거 같다. 김 대표가 화장실에 들어서니 직원들이 웃음과 대화를 멈추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어, 이거 달라졌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대표는 상무, 전무 때 직원들과 화장실에서 종종 농담을 주고받았다.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는 모습을 우연히 봤던 직원에게 “여자 친구 잘 있지?” 하고 놀려주거나, 아침에 화장실에서 두 번이나 마주친 직원에게는 “이 과장 너도 어제 술 많이 먹었지?” 하고 짓궂게 묻기도 했다.
“그랬는데 이제는 임원이나 직원들이 저를 어려워하더라구요. 회사 행사 때 제 옆자리에는 앉으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 웃고 떠들다가 제가 다가가면 뚝 그치기도 하구요. 좀 섭섭하더만요.”
김 대표는 대표가 되었다고 직원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임원으로 오래 같이 일했고 대표도 임원의 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건 자신의 생각이었고 직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배가 살살 아팠던 김 대표는 화장실로 향했다. 마침 화장실이 만원이라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직원이 있었다. 김 대표는 그 직원 뒤에 섰다. 직원은 김 대표를 보고 꾸벅하고 인사를 했다. 30초쯤 지났을까 그가 시계를 보더니 화장실을 나갔다. 김 대표는 ‘회의라도 있나 보네’ 하고 생각하다가 아차 싶었다. 그 직원이 김 대표에게 순서를 양보한 것이었다.
“일이 급한데 아래위가 어디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직원들이 화장실에서 저를 만나는 게 불편하기는 하겠더라구요. 대표 전용화장실을 만드는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용화장실은 대표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직원들을 위한 것이죠.”
사실 회사 화장실은 뒷소문과 안부를 주고받는 마을회관 같은 곳이다. 누가 없는지 전후좌우를 확인한 후 상사 흉도 보고 회사에 대한 불만도 늘어놓는다. 그런 ‘신성한 곳’에 방해되게 대표가 얼쩡거린다는 건 직원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그렇지만 대표도 일은 봐야 하는 법이라 그는 화장실에서 직원들에게 말도 걸지 않고 본업에만 충실하기로 했다. 화장실이 꽉 차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방으로 왔다가 다시 가기도 했다.
“직원들이 대표님을 어렵게 느끼는 게 섭섭하셨나 봅니다. 어떠셨습니까?” 박 코치가 물었다.
“아무리 제가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직원들이 친근하게 느끼겠습니까? 제 욕심이지요. 화장실 사교는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대신에 김 대표는 화장실 오가는 길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입주해 있는 건물은 큰 사무공간의 긴 변을 따라 복도가 있었다. 복도의 한쪽 끝에 대표실, 다른 한쪽 끝에 화장실이 있었다. 대표실을 나와 복도를 걸어가면 바로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김 대표는 대표실을 나와 빠른 길인 복도가 아니라 사무공간을 거쳐서 화장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오가는 길에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나면서 짧은 시간에 사무실 모습을 보는 건데 그게 큰 의미가 있던가요?” 박 코치의 질문에 김 대표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직원들 공간에 가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거 보다 오히려 스치듯 지나가면서 보는 게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지요.”
경영자가 자신의 방을 나와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말을 걸거나 업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목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직원들에게 다가가고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회사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소위 ‘MBWA (Management By Wandering Around, 배회경영(徘徊經營))’이다.
경영자들은 회의실이나 임원실이 아닌 곳에서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회사 내를 돌아다닌다. 그렇지만 그때 경영자들이 보는 모습은 그들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상사가 주위를 돌아다니면 직원들은 경영자를 의식한다. 어떤 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를 하기도 하고 어느 부서장은 상사를 따라 다니며 ‘영접’과 ‘의전’을 하기도 한다.
김 대표는 천천히 사무 공간을 거쳐 화장실로 가면서 내색 없이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했다.
‘A부장은 직원들과 이야기할 때 참 즐거워 보이네.’
‘B팀장은 나한테 보고할 때는 조근조근한데 직원들한테는 말할 때는 좀 막 하는데...’
‘C차장은 골치 아픈 일이 있나, 전화 받는 소리가 좋지 않네.’
‘D팀은 회의 때 웃음소리가 큰 게 부서 분위기가 참 좋구나.’
‘E과장과 F과장은 사이가 안 좋은지 주고받는 말에 가시가 있네.’
직원들이 보고나 회의 때 보여주는 모습은 정제된 모습이다. 누구나 상사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심하게 말하면 ‘체’하고 ‘척’하는 모습이다.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만 가지고 판단하면 그들이 리더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역할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MBWA나 김 대표처럼 ‘화장실 가는 길’에서 경영자가 직접 직원들의 평소의 모습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경영자는 매 순간 평가를 하고 있네요. 직원들이 이걸 알면 편하지 않겠는데요?”
“박 코치님이 브런치에 올리지 않으시면 됩니다. 뭐 다 알고 있을 겁니다. 하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