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년 전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글을 올렸다.
“아침에 신입사원 스무 명이 첫 출근하는 날이라고 인사를 왔다. 한 사람씩 다음 질문에 대해 30초씩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다.
‘첫 출근하면서 무엇이 가장 기대되는가? 어떤 일을 할 것 같은가? 해 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우리 부서는 어떤 분위기일 거 같은가?’
신입의 설렘과 긴장이 느껴지는 대답을 들었다. 대표가 한 말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회사에 '이따위 일'이란 없습니다.
소속 부서에 가면 '내가 이따위 일 하려고 회사 들어왔나' 하는 자괴감이 드는 일을 시킬지 모릅니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일이라도 의미가 없는 일은 없습니다. 일에서 의미를 찾으십시오. 자료 복사에도 엄청난 의미가 있습니다. 일의 의미는 일을 시키는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 찾는 것입니다.
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를 떠나면서 '회사가 비전을 주지 못해서 그만 둔다' 고 하는 직원이 가끔 있습니다. 비전은 직원 자신이 발견하는 것이지 회사가 던져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일의 최고 전문가가 될 수 있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일할 기회는 최대한 드리겠습니다. 그걸 자신의 일로 만드는 건 여러분이 할 일입니다.’
#비전못찾겠으면얼른그만두라고할라다가참았음
#한가지얘기한다고하고몇가지했네”
#2
‘퇴사’는 화두가 되었다. MZ세대의 젊은이들에게 퇴사는 로망이다. 퇴사를 준비하는 퇴사학교도 있고 퇴사에 대한 책도 많이 나와 있다. ‘퇴사하겠습니다’, ‘퇴사 전 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퇴사하기 좋은 날’ 같은 제목의 책이다. 취준생에 이어 퇴준생이라는 용어도 생겼다.
퇴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퇴사는 지금 몸담고 있는 직장을 떠나는 일이다. 이에 더해 MZ세대에게는 기업 조직을 떠나 빡빡하지 않은 다른 곳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무원이 되거나 자영업을 준비하거나 자신의 아이디어로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도 한다.
직장 상사의 입장에서는 어떤 이유이든 젊은 직원이 회사를 떠날 결심을 했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나는 힘들게 뽑은 직원이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떠나겠다고 하면 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상사들이 ‘요즘 젊은 직원들은 인내심이 없어서...’ 하는 것은 책임을 미루는 변명일 뿐이다. 직장 다니는 딸을 둔 입장에서 보아도 내 딸이 그런 부서 분위기가 싫어서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한다면 말리지 않았을 거 같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물론 그런 조직 분위기를 방치하고 있는 대표 자신도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입사 후 일이 년이 지나지 않아 공공부문으로 옮기거나 자기 자신의 사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필자는 몇 년 더 다녀 보라고 조언한다. ‘회사에서 배울 것이 있다. 일이 년 다닌 걸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5년은 채워 보라’고 충고한다.
기업 조직에서 일하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기업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의 장점은 무엇인가?
기업 조직에서 일하는 것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어울려 일한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의사결정이 어떻게 내려지는지, 일의 진행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일과 개인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또한 상사와 부하, 주주와 고객, 정부와 협력업체 같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일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한 마디로 조직에서 일과 관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깨치게 된다.
또한 기업에서 일하면서 회사 차원의 일하는 방법과 함께 일 잘 하는 동료들의 업무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업종과 업무에 대한 지식도 쌓을 수 있다. 이때 배운 지식과 일하는 방법은 하나의 잣대가 되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익히는 출발점이 된다. 기업 조직은 성장과 배움의 도장(道場)이다.
그러나 배우는 것이 있어도 회사의 조직 문화나 추구하는 방향이 자신과 다르다면 회사를 떠나는 것이 낫다. 원칙이 다르면 성장하고 배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유연하고 개방적인데 회사가 원칙을 중시하고 보수적이라면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3
경영학자인 짐 콜린스(Jim Collins)는 그의 책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에서 ‘맞는 사람을 버스에 태우라’ (get the right people on the bus)고 했다. ‘사람이 먼저, 사업은 그 다음’ (‘First Who, Then What’) 이라는 생각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어떤 사람을 조직의 구성원으로 맞아들이느냐가 어떤 사업을 하느냐 보다 더 우선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맞지 않는 사람을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 맞는 사람을 버스에 태우면 버스가 가야할 곳을 알게 되고 방향을 바꾸기도 쉽다고 한다.
이는 지극히 경영자의 관점이다. 갈 곳을 정하지 않고 종점을 출발하려는 중이거나 중간에 목적지를 바꿀지도 모르는 버스 운전사(경영자)는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사람을 버스에 태워도 괜찮다.
나는 젊은 구성원들에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버스에 타라’ (get on the right bus)고 이야기하고 싶다. 종로행 버스에 타서 강남역으로 가기를 바랄 수는 없다. 강남역으로 가고 싶다면 애초에 강남역행 버스를 잘 찾아서 타야 한다. 잘못해서 종로행 버스를 탔다면 얼른 내려서 갈아타는 것이 맞다. 먼저 버스에 탄 선배들은 버스를 잘못 탔다는 걸 깨달아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만원버스의 뒤쪽에 서있는 것도 아니고 편하게 좌석에 앉아 있으니 내리기도 싫고 꽉 찬 승객을 헤치고 나오는 것도 쉽지 않다. 방금 버스에 타서 출입구 근처에 서있는 젊은이들은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버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 얼른 내릴 수 있다.
회사에 섭섭한 일이 있을 때 ‘내가 이 회사에 청춘을 바쳤다’고 한탄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사실 회사는 청춘을 바치라고 말하지도 않았고 평생을 같이 하자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짝사랑일 뿐이었다.
최근 어느 강연에서 ‘직장과는 썸만 타라’ 는 말을 들었다. 맞다. 직장과는 사랑에 빠질 필요가 없다. 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탔어도 중간에 목적지를 바꾼다면 내릴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