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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용 Aug 19. 2022

'놉(NOPE)'을 재밌게 볼 수 있는 추천 경로

다소 황당해할 분들도 '그나마' 재밌게 볼 수 있는 '스포 無' 가이드

지난 17일 개봉한 조던 필(Jordan Haworth Peele) 감독의 신작 '놉(NOPE)'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영화다. 예고편에 한해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궁금증 유발이 전부인 영화로 봐도 될 정도다. 그 궁금증이 적어도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유인책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예고편을 봐도, 스포일러를 우려해 가급적 인터뷰를 자제하는 감독의 행보를 봐도 그렇다.


문제는 궁금증이 해소됐을 때 허무함을 느낄 일부 관객이다. 관객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반전이 약하다거나,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부족해서는 아다. 그 정도면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반전이고, 충분히 흥미 있는 연출이다.


그렇다면 왜 허무함을 느끼는 걸까. 필자의 견해로는 중요하게 여겼던 그 '반전'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워낙 이 영화의 마케팅이 '궁금증 유발'에 방점을 찍은 터라, 일부 관객은 '스포일러만 당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예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중요한 메시지는 '반전'과 크게 관련이 없다. 아니, 그냥 없다고 봐도 된다. 적어도 필자의 견해로는 그렇다. 때문에 '어떻게든 반전을 미리 맞춰주겠어!'라는 태도로, 흡사 승부를 벌이듯이 추리력을 동원한 관객은 더욱 허무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플롯이다. 물론, 그 관객의 잘못도 아니고 감독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필자가 극장에서 '놉'을 관람했을 때도, 해당 상영관의 관객 대부분은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출구로 향하던 관객은 필자와 다른 한 명뿐이었는데, 웅성거림을 들어보면 대략 '이게 뭐지?'라는 분위기였다. 다들 어떤 부분을 기대했는지 알 것 같았기에, 그 '웅성거림'을 무조건 아쉽게만 느낄 수도 없었다.  


게다가 '놉'은 공포영화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적지 않은 관객이 예고편만으로 한정된 정보를 접하다 보니, 공포물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굳이 '공포물'로 장르를 규정한다 쳐도 '관객이 예상하는' 경로로 공포심을 조성하는 영화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반전은 중요하지 않았고, 생각보다 무섭지도 않았으니, 이 영화를 보고 잠시 할 말을 잃는 관객들이 생길 법도 하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그런 종류'의 기대감을 안고 있던 관객을 '저격'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친절하게 해석해 주셨을 것이라 믿고, 필자는 '그나마' 놉을 재밌게 감상할 수 있는 자세, 경로를 추천하고자 한다. '흑인 기수'가 상징하는 메시지나 자본주의에서 '볼거리'가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현상, 성경의 나훔서 3장 6절을 인용한 이유 등은 굳이 필자가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단 그냥 보시라. 장르영화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도 갖지 마시길 권한다. 예를 들어 외계인의 우주선이 나오는 영화라면, 보통 수십대의 전투기가 미사일을 쏴대도 우주선의 보호막에 막혀 고전을 면치 못한다거나, 핵공격을 고민하는 군(軍) 수뇌부의 모습을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유추(類推)는 독약이다. 무엇을 상상해도 '즐거운 감상'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으니, 생각을 완전히 비우고 백지에서 시작하시길 추천한다. 그렇게 감상하면 최소 '어이가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은 방지할 수 있다. 그동안 헐리웃(할리우드)의 대동소이한 SF·공포물에 익숙해진 시각(경로)에서 벗어나라는 얘기다. 길의 초입이 비슷하다고 예전에 지나갔던 경로를 떠올린다면 자연스레 '이게 뭐야'라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영화다.

'얼마나 무서울까'라는 기대감도 갖지 마시길 권한다. 이 영화는 관객을 공포에 빠트려 쾌감을 선사하는 영화가 아니다. 물론, 시각에 따라 우리 사회의 이면에 대한 공포심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그동안 익숙해진 헐리웃 공포물의 경로'를 떠올리면 절대 무서운 영화가 아니라는 얘기다. 많은 관객이 여기서 허무함을 느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 부분만 먼저 확실히 짚고 넘어가도 '무작정 어려운 영화'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헐리웃과 자본주의의 생리, 인간의 악한 이면 등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도 지나치게 집중하지는 않길 권한다. 메시지와 메타포를 해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토리의 흐름에 눈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다. 과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2020)'이 개봉했을 때도 지인으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아 비슷한 답변을 해준 기억이 있다. "저는 문과라서 너무 어려우면 이해를 못 할 것 같아 걱정돼요. 얼마나 어렵나요?"라는 질문이었는데, "영화 '터미네이터'가 타임머신의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했기 때문에 재밌었나요?"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영화가 설명하는 과학적 원리를 이해 못 해도 너무 집착 마시고 스토리 흐름에 집중하세요. 큰 줄기를 먼저 이해하지 못하면 가지는 의미가 없습니다"라고.. 그 말에 용기?를 얻은 그는 이후, 극장에서 테넷을 감상했고 "스토리만 집중했더니, 생각보다 난해하지 않았고, 미처 이해하지 못한 과학적 지식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궁금증을 풀었다"며 고마워했다.


영화를 즐겁게 감상하는(사랑하는) 방법은 '두 번 보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꼭 영화를 극장에서 한 번 감상한 것 만으로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모두 이해해야만 '영화를 잘 보는 사람'은 아니다. '놉'이라는 영화도 처음에는 어떤 고정관념도 없이 스토리에 집중해 즐겁게 감상하시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N차 관람을 통해 미처 보지 못했던 디테일까지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 재미를 느끼시길 추천한다.


최근 들어 적지 않은 관객들 사이에서 수년, 수십 년간 영화 감상·비평을 생업으로 삼아온 전문가들과 비슷한 수준의 지식을 갖춰야만 '영화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심리가 퍼지는 것 같아 다소 우려다. 영화는 즐기는 것이지, 개인적 지식을 뽐내거나 해부(解剖)가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관객으로서 어떻게 하면 영화를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지만 생각하면 된다. 올여름은 대작들이 잇따라 개봉해 관객으로서는 너무 행복할 따름이다. 평소 극장 방문을 꺼렸던 분들도 '놉'을 비롯해 다양한 수작들을 부담 없이 즐기시 바란다.


한 줄 소감 : 욕망의 자학... 당신이 기대한 것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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