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는 무엇일까.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필자는 '극장이 제공하는 설비가 없이는 제작자의 의도를 100% 체감하기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이해' 대신 '체감'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말 그대로 압도적 스크린과 대형 스피커를 통해 느껴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해만으로 충분한 영화도 있지만, 간혹 어떤 영화는 온몸으로 체감해야 제작자가 의도한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런 이유로 아이맥스(IMAX), 혹은 3D로 제작된 영화는 가능하면 극장에서 관람하는 편이다.
음력 설인 22일 부푼 마음을 안고 극장으로 향했다. 필자는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거주하고 있는데, '우리 동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스크린이 큰' 천호 CGV의 아이맥스 상영관이 가깝다는 점이다. 엄밀히 따지면 광진구와 강동구로 행정구역이 다르지만, 워낙 거리가 가까워 자주 애용한다. 과거 어벤져스 인피니티워&엔드게임, 더배트맨, 한산, 탑건: 매버릭 등 스펙터클한 작품들도 모두 천호 CGV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감상했다.
아바타2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이것이 21세기, 집에서 편하게 혼자 영화를 즐기는 시대에도 극장이 존재하는 이유구나'라고.. 흡사 눈앞에서 나비족이 연기하는 듯한 이 생생함은 아무리 좋은 홈시어터를 구비해도 '집'에서는 온전히 느끼기 어려울 것이라고...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도 바다의 수면을 넘나 들었고, 간접적으로나마 해양 생물들과 교감할 수 있었다. 물론, '교감'에 한해서는 3D효과뿐만 아니라 해양생물의 시각에서 나비족(로아크)과 인간들을 바라보는 시점쇼트(point of shot)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아바타2 제작 과정. / 출처 : 네이버 영화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는 전작인 '아바타'와 스토리가 비슷하고 주인공들이 활약하는 배경만 '숲'에서 '바다'로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필자도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얘기다. 적어도 영화를 볼 때 와닿는 메시지에 한해서는 더욱 그렇다. 전작과 마찬가지로'어떤 공익광고보다 자연보호 캠페인에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환경(비용)을 생각해 상영 후 3D안경을 수거한 CGV에 박수를 보낸다.
'중경삼림(1995)'과 '동사서독(1995)' 등으로 유명한 중국의 왕가위 감독은 과거 영화 평론가 이동진과의 인터뷰에서 좋은 영화의 기준을 묻자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 기준을 적용하면 아바타1과 아바타2는 필자에게 모두 '좋은 영화'다.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을 거친 서구열강이 아프리카를 침략한 과거를 상기할 수 있었고, (그들에게만 잔인하지 않은)일본의 포경선도 떠올릴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아바타2를 감상한 뒤에는 '어른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연과 친구가 되는 법을 잊었다'거나, '자연과 친구였던 기억조차도 사라졌다'는 씁쓸함이 밀려 왔다. 아이맥스와 3D 등 기술적 측면이 극장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라면, 아바타2의 서사적 측면은 자본과 (인간으로서의) 명예 사이에서 우리가 서 있어야 할 균형점은 어디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신' 조차도 인간 중심으로 사고하는 서구권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이는 터미네이터2와 에이리언2, 그리고 아바타2에 이르기까지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철학을 관통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아바타2의 한 장면. / 출처 : 네이버 영화
최근 몇 년 동안 글로벌 경제위기를 이유(핑계)로 힘이 실린 '자국 우선주의'와 이를 토대로 다시 머리를 들고 있는 '인종차별', '순혈주의'도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아바타2의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의 가족은 (본질은 지구인인) 아바타와 나비족,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심지어 (완전한) 지구인까지 골고루 섞여있다. 그래도 그들은 가족이고, 가족은 하나라는 믿음 아래 난관을 헤쳐 나간다. 앞으로 닥쳐올 범국가적 위기에서 인류가 해야 할 일이 (이익을 지키기 위해) 차별점을 부각하고 배척하는 것인지,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공통점을 찾고 협력해야 하는 것인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앞서 언급한 장점들을 제외해도 아바타2를 '좋은 영화'라고 느낀 이유는 또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21세기 영화'가 지향해야 할 시사점을 던진 작품으로 보인다. 이렇게 원론적이고, 단순하고, 건전한 주제로 (기술의 힘을 더해) 꼭 극장에서 봐야 할 '재밌는'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아바타2는 최근의 트렌드를 모두 뒤집는다. 유튜브 등 각종 SNS를 통해 1~3분가량 짧은 콘텐츠에 익숙해진 관객이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중도하차 없이 관람한다. 과거에 비해 심의의 폭이 넓어지고, 보다 제약이 적은 환경에서 제작되는 영화나 드라마들이 쏟아지는 탓에 갈수록 '자극적인' 영상을 원하는 이들 조차도 이런 '동화 같은' 얘기를 즐겁게 감상한다. 물론,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3D나 아이맥스 기술을 활용하지 않은 모든 영화를 작품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 중 '아바타2' 만큼 상업성(1000만 관객 돌파)까지 갖춘 작품은 흔치 않다. 엄청난 반전이 있다거나, 지금껏 보지 못한 잔인함이 내재돼 충격적이라거나, 혹은 좋아하는 배우가 (실물로) 출연하는 영화가 아니더라도, 이 정도의 파급력을 던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