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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츄잉 Jul 28. 2024

3년차 수습회계사 이야기(EP.完)

EP 完. 끝이 있으면 시작도 있다



 퇴사 절차 완료 후 노트북 반납을 기다리면서, 동기들을 포함해서 고맙다고 표현하고 싶은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곤 했었습니다. 동기들이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길래 솔직한 심정으로 너무 두렵다고 대답했죠.

저는 비유를 좋아해서 드립을 꼭 치는데, 다들 나이대가 비슷한 동기들이라 제 공포감을 이렇게 설명했었습니다.


  "어릴 때 디지몬 봤었지? 아구몬이 진화하다가 삐끗해서 잘못되면 뼈다귀 괴물이 되거든? 혹시 기억나?

지금 내 기분이 딱 그 기분이다. 5년 뒤에 뼈다귀 괴물이 되어있으면 어떡하지"


 다 한방에 이해했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비유는 정말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 뒤에 얼마나 어떻게 두려운지 설명을 안 해도 되더군요. 비유가 기가 막힌다고 다들 자조하면서 낄낄거렸습니다. 감사팀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가서 뭘 어떻게 해볼 생각인지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의 영원한 마스코트, 아구몬 



 디지몬 어드벤처를 아시나요? 저는 90년대생입니다. 제가 어릴 때 포켓몬스터와 디지몬 어드벤처가 어린아이들에게 양강구도였었죠. 저는 디지몬 파였습니다. 뭔가 작은 공룡 비스무리하게 생긴 것들이 총총 돌아다닌다고 무지하게 귀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디지몬을 상징하는 마스코트는 지금 봐도 반가운 저 아구몬이죠.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또 다른 상징, 워그레이몬)


저 아구몬이 애정과 사랑을 듬뿍 받아 정상적인 진화를 거치면 위와 같은 간지가 철철 나는 워그레이몬이 됩니다. 저 휘황찬란한 갑옷을 유치원 다닐 시절 엄청 멋있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도 기억나는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어린 시청자들이 당시 꽤나 무서웠다고 평가하는 장면입니다. 바로 아구몬이 뼈다귀 괴물이 되는 장면이죠.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아구몬이 당시 진화를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아구몬 집사였던 태일이가 진화하라고 온갖 짓을 다 합니다. 힘을 내야 한답시고 배가 터질 것 같은데 계속 음식을 먹이는 식고문을 행하고, 빨리 진화하라고 갈구고 정말 아구몬을 못살게 굴던 상황이었죠. 결국 어찌찌 진화시키기는 했는데, 제대로 될 턱이 있나요. 결국 아래와 같이 상상치도 못한 뼈다귀 괴물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저도 진짜 뼈다귀 괴물이라고 말하고 다니다가 이름을 검색해 봐서 기억했는데 스컬그레이몬이었죠.




어린 시청자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던 바로 '그 장면'....지금봐도 그로테스크하게 생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다 워그레이몬이 되길 바랄 겁니다. 그게 누군가에겐 사랑이고, 돈이고, 명예죠. 인생에 진화라는 표현을 쓰는 게 웃기지만, 지금 저희가 하루하루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유는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일 것입니다. 5년 뒤, 10년 뒤가 지금보다 나을 거라는 기대감.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각자의 워그레이몬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아구몬인 셈이고 진화의 진화를 거듭하려고 애쓰는 디지몬인 겁니다.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그리고 퇴사하기 직전까지도 제 퇴사를 망설이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제 인생이 제대로 흑화 해서 저 스컬그레이몬처럼 되는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생 전체가 아니라 '직업적인 면'만 놓고 본다면 국내에서 누구도 무시 못 할 실력자가 되는 것이 회계사의 '워그레이몬', 면담 당시 본부장님 말마따나 뭘 해도 애매한 어중이떠중이 회계사가 '스컬그레이몬'아닐까요? 









인생에는 정답(正答)은 없어도 정도(正道)는 있다고 합니다. 회계사에게 정도는 당연히 Big4죠. 커리어의 요람, 가장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실무를 배울 수 있는 기관.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겁니다.


정도의 장점은 적당한 고점과 높은 저점입니다. Big4에서 버티고 버틴다면 SM(Senior Manager)나 D(Director)까진 진급 누락을 몇 번 당할지 언정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의 연봉은 보장될 것이고, 임원이 아닌 이상에야 함부로 자를 수가 없는 고용환경 특성상 철판만 깔 수 있다면 뒤에서 동정을 들을지 언정 정년까지 사이드 브레이크 채우는 것도 가능하겠죠. 밖에서는 그래도 Big4 다니는 회계사라고 무시할 일은 없을 것이고, 승진을 못할지 언정 본인 역량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니 그때 나와서 다른 길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이가 많이 차서 리스크는 무지막지하겠지만 말입니다.


반대로 저처럼 일찍 로컬로 나가는 결정을 한 회계사는 정도를 벗어난 회계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더 격하게 말하면 탈선. 나중에 다시 돌아가니 어쩌니 하지만 수습도 채 떼지 않고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 는게 팩트입니다. 지금 제 업무의 리스크는 퇴사를 하지 않은 평행세계의 제 자신과 놓고 보면 매우 큰 편이죠.





두려움 이외에 저를 괴롭혔던 감정은 자기혐오입니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서, Big4에서 계속해서 10년 15년 버틴 선배들처럼 살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고 부르짖으면서 정작 사파의 커리어를 걷는 게 두렵다는 모순에 자기혐오가 들었습니다. 정도의 커리어에서는 정도의 고점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의연하게 난 그럼 나가겠다. 난 나가서 내 길을 걸어보겠다 하고 일말의 두려움 없이 때려칠 수 있는 자신감이 왜 저에게는 없을까요. 당연히 지금은 그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감도 들 수 없는 게 당연한데, 이게 명명백백히 밝혀질려면 시간이 해결해줘야 하는데 사람은 그걸 알면서도 당장의 확신과 안정을 원할까요. 정작 지금은 그 결과를 모르니까 불나방처럼 뛰어들 수도 있는거고, 그 과정에서 뜻밖의 결과가 발생한다는 사실도 알면서 말입니다.




투자를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저는 주식에 대한 공부와 경험을 쌓아볼수록 인생과 전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주식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인지도 있는 기업, 망하지 않을 기업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짜는 게 '정도'입니다. 돈을 벌면 버는대로 좋고, 돈을 잃어도 엄청난 데미지까진 없죠. 정도의 주식은 언젠간 오르겠지라는 기대감, 망하진 않겠지라는 안도감, 그 회사에 투자한 게 나 말고도 많다는 동질감까지 주거든요. 중요한 부분입니다. 정도가 아닌 주식은 저 세 가지 중에 '동질감'은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도가 아닌 주식이라 하더라도 공부와 분석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해볼 만 하겠는데? 싶은 경우도 있고, 그런 경우에는 의연하게 투자를 감행하기도 하죠. 지금 그게 제 상황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미 충분한 생각과 고민을 거쳤고 그래서 나가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못 할게 뭐 있겠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저는 일반적이지 않은 커리어로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더 일반적이지 않아진다고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지요. 저는 최근 2년간 계획이 틀어졌을 때 중요한 건 '가능한 빨리 원래 계획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맞는 계획을 다시 짜는 것'임을 느꼈습니다. 거취가 달라질 뿐이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던 스스로가 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본질이 변하지 않았는데 현상이 달라졌다고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2018년도에 전역을 했습니다. 그 뒤로 남은 한 해에서 새로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복학하면 동기들 거의 아무도 없고, 친하게 지내던 선배들 학교에 잘 없는데 이젠 내 대학 생활에 이벤트가 뭐가 있겠냐는 생각이었죠. 어차피 2019년 시작하자마자 다시 휴학할 텐데 말입니다(당시, CPA 준비가 결정 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복학하고 나서 한 교양 수업에서 선배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제가 신입생 입학 후 1주일쯤 뒤에 군대를 가는 분이셨는데, 당시 일면식도 거의 없었죠. 이 선배는 동기들 입대주에 겁나 취해서 저한테 아무리 1학년 때 놀아도 자기처럼 놀지는 말라면서 많은 조언을 해주고 군대로 사라지셨습니다. 그때가 그분과 입학 후 말을 나눈 유일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뒤로 수업에 갔는데 살이 많이 빠졌을 지 언정 그 선배가 보이더군요. 저를 못알아보고 지나치길래 가서 돌려잡고 인사를 하고 기억 안나냐고 물어봤는데 놀랍게도 둘 다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진솔한 조언에 고마운 기억으로 남았던 선배라고 기억하고 있었고, 그 선배는 술 쳐먹고 친하지도 않은 후배한테 개꼰대짓 했다고 굉장히 부끄러운 기억으로 생각하고 있어 차마 저한테 먼저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정말 의외의 인연으로 그 선배와 접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2018년도의 생활에서 나름 새로운 이벤트죠. 그리고 당시 학교생활 와중에 편의점 야간알바를 했었는데, 그 편의점 알바 생 중 1학년 때 교양을 같이 들었던 타 과에 한 친구와도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의 인연이란 게 생각도 못하게 다시 만날 수 있구나라고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친해진 동기와 거의 룸메이트마냥 자취방에서 공부도 같이하며 붙어살았던 기억도 있고, 전역하고 군대 후임들이 3명이 찾아와 당구 치고 술 마시고 놀았던 기억도 납니다. 당시 부대에서 제가 있던 학교까지 3시간 거리였는데 정말 고마웠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제 인생에 이벤트가 꽤 많이 생긴 3개월이었죠.







 2019년도에 CPA를 시작할 무렵, 그 뒤로 올 한해의 새로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부하면 하루 종일 책만 볼 텐데 무슨 이벤트요? 있으면 이상하지 않을까요?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 겁니다.


그런데 1차 시험을 한 5개월 정도 공부했을 무렵, 집 주위의 대학교에서 회계학과 복학한 모 대학생을 상대로 전공 과외를 하게 됩니다. 토요일까지 공부하고, 일요일 시간을 내서 과외를 하는 방식이었는데 나름 계속 책만 보는 인생에서 신선한 이벤트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019년은 마침 전국 각지에 흩어던 친구들이 본가에 거의 다 내려온 상황이어서 매주 일요일 저녁쯤에 만나 술 먹고 놀았죠. 덕분에 정말 재밌었습니다. 공부하는 게 스트레스가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구들한테 많이 의지했고 정서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매주 매주 일요일만 기다렸던게 생각나네요.



 2020년도에 동차가 끝나고 복학하고 나서, 이제 진짜 진짜 새로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줌밖에 안 남아있던 동기들 마저 모두 사라지고, 선배들은 진작에 학교에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2020년도는 집합 금지가 빡세게 이루어져 모임도 힘들고, 학교의 모든 수업도 ZOOM으로 이루어지던 상황이었습니다. 학교 근처에 자취하면서 학교에 3번도 안 가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2018년도에 교양 수업에서 마주쳤던 그 한 마디 나눈 선배는 대학원생이 되어 바로 제 자취방에서 3분 거리에 살고 있었고, 제가 듣던 비대면 수업에서 팀플을 하며 유학생 친구 한 명과도 친해집니다. 비대면으로 해서 조원들끼리도 카톡이나 비대면으로만 만났었는데, 서로 팀플에서 열심히 하고 챙겨주며 나중에 친해져서 밥도 먹고 카페에서 같이 공부도 했었죠. 그 뒤에 그 유학생 친구는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서 취업을 하고, 2023년 늦봄에 한 번 한국으로 넘어왔는데 그 때도 반갑게 만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2021년도에 4학년이 되고 모 로컬에서 파트 회계사로 근무한 후 Big4 입사를 준비하던 2022년 여름,  제 인생에 새로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새로워지더군요. 생각지도 못했던 전산감사 본부로 입사해서 그 안에서 IT 용어를 배우며 살아남기 위해 남는 시간을 공부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2024년, 저는 제 인생의 새로움이 동일 회계법인의 감사본부에서 시작될 줄 알았는데 입사할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져있죠. 저는 제가 입사하고 나서 2년 만에 퇴사할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매년 똑같은 생각을 했지만 매년 빗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꼈던 건 인생에 새로움은 언제든 있고, 어떻게든 있으며, 지금 현재도 저에게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그게 눈에 보이지 않아서, 아니면 지금 상황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 당장 미래를 상상하기도 짜증이 나서 그렇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것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마치 머릿속으로 판타지 세계의 기깔나는 장면은 그려낼 순 있어도 그것을 하나의 세계관, 하나의 스토리로 구현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인 것처럼요. 내 인생의 우연이 무엇일지에 대해 잠깐 윤곽선을 그리다가 구겨버리기 바쁜데, 색칠까지 완료된 한 폭의 그림의 모습으로 다가올 거라는 생각을 어떻게 할까요.


이번 에피소드의 제목을 그래서 저렇게 지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에게는 매년 항상 무언가가 끝을 맺었고, 무언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게 공부든, 인연이든, 성과든 무엇이든 그랬죠. 이제는 거취가 그다음 차례로 저한테 다가왔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커리어를 걷고 계시는 많은 분들이 비슷하신 생각을 해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끝장난다고 생각하기에는 그 인생을 살아가는 본인이 바뀐 게 없으며, 본인의 발버둥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에는 세상이 그대로 멈춰있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의 결정에 따른 새로운 우연과 인연이, 읽어주시는 분들의 인생에 항상 시작되리라고 믿습니다. 


3년차 수습 회계사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지을려고 합니다. 사실 이 글의 내용은 '3년차 수습회계사 이야기' 보다는 '3년 차 수습회계사가 된 이유'가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지도 못하게 빠르게 Big4를 나오게 된 이야기와 함께 제 인생의 첫 번째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에 더하여 제가 실제로 지금 로컬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고, 어떤 업무를 배워나가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이어 쓸 계획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주제에 너무나 많은 종류의 글이 담겨 주제가 희석되거나, 연재가 지나치게 늘어지는 걸 방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후의 이야기는 '2회차 뉴스탭 이야기'를 통해서 이어 쓸려고 합니다.


아직 실무적으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지 않은 회계사의 이야기지만,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회차 뉴스탭 이야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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