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가 아니라 예술영화고 해외 영화제에도 나갈 겁니다

037.

by Zinn


잠시 후 준철의 매니저에게서 전화가 왔다. 준철 형이 이상한 문자를 보낸 다음 연락이 안 되는데 자기는 지금 지방에 내려와 있으니 나보고 준철의 집에 가서 상태 확인 좀 해달라는 것이다.


10년 전 ‘꼴리는 영화’ 폭망 이후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어서 모른 척 하고 넘어가려는데 문득 나는 더 이상 ‘꼴리는 영화’의 폭망 감독 최경진이 아니라 ‘가족사냥’으로 대박 감독으로 거듭날 지도 모르는 최경진이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모른 척하면 안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된다면 감독 최경진의 영화 인생은 ‘꼴리는 영화’로 끝이다. 차기작이고 뭐고 다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바로 택시를 타고 준철의 집으로 향했다. 잠깐 준철이 난니맨인가 의심도 해 봤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준철은 아닐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제로다. 준철은 익명으로 계정을 만들어서 사람을 협박 할 만한 지능이 못 된다.


준철에게 마음의 빚을 느끼는 이유는 준철이 오랜 조단역 생활 끝에 이제 막 주연급으로 뜨려는 찰나 단지 주연을 시켜준다는 이유로 ‘꼴리는 영화’에 출연 결정을 했지만 ‘꼴리는 영화’를 마지막으로 다시 만년 조단역 신세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물론 나 혼자 만의 잘못은 아니다.


똑같이 ‘꼴리는 영화’에 출연한 현규는 지금은 잘 나가는 탑스타님 아니신가. 준철과 현규의 차이는 연기력이다. 준철은 꾸준한 조단역 활동으로 주연급 인지도를 얻었지만 연기력은 주연급이 아니었고 현규는 인지도는 낮았지만 연기력은 주연급이었다.


준철이 원래 이렇게 징징대는 형은 아니었다. 촬영 때까지만 해도 착한 형이던 준철이 돌변한 건 개봉 일주일 후부터였다. 개봉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꼴리는 영화’는 얼마 되지도 않는 상영관에서조차 간판이 내려갔고 총 관객수는 만 명도 넘지 못한 채 극장 상영이 끝나버렸다.


말 그대로 폭망한 것이다. 사실 개봉 전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다. 언론 시사회는 무리해서 열었지만 별 반응이 없던 가운데 그나마 혹평만 잔뜩이었고 극장에서는 상영관도 열어주지 않았으며 무대 인사는 폭망을 감지한 배우들이 먼저 취소해버렸다. 배우로서의 본능이 있는 건지 아무도 없는 텅 빈 극장에서 무대 인사를 하는 흑역사를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나는 그래도 감독이랍시고 책임감 있게 무대 인사를 준비했다. 비싼 청담동 미장원과 피부과에 다녀오고 체중 감량도 했다. 하지만 무대 인사는 커녕 불러주는 사람도 끊겨버려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다가 간판이 내려가버렸다. 흥행 성적이 저조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폭망해 버릴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이후 ‘꼴리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단 한 번도 ‘꼴리는 영화’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고 내가 보내는 카톡은 전부 읽씹해버리거나 며칠 뒤에 단답형으로 답이 왔다. 그리고 내 영화로 데뷔하고 몇 년 뒤에 스타가 된 현규의 필모그래피에서는 ‘꼴리는 영화’가 삭제되어 버렸다.


현규와 나는 공식적으로는 같이 영화를 찍은 적이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뒤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만난 현규의 매니저는 내 인사를 씹었고 마치 투명 인간 보듯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개봉 전까지만 해도 감독님으로 깍듯이 모셨었는데 그에게 폭망 감독은 감독이 아닌 것이다.


이런 저런 회한에 잠겨 준철의 집 초인종을 누르자 금방 문이 열렸다. 들어가보니 지방에 있다던 매니저가 현관에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아시잖아요. 형 가끔씩 저러는 거. 그나저나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차기작 준비 잘 되고 계시다면서요?”

“누구한테 들었냐?”

“그냥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형 잘 부탁드려요.”


매니저는 준철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나가버렸고 준철은 거실 소파에 앉아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는 걸 보더니 쓴 웃음을 지었다.


“잘 지냈네. 얼굴 좋아 보여.”

“잘 지내긴.. 내가 죽지 못해 사는 거 알잖아.”

“죽지 못해 산다라.. 그렇다면 나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있지. 나랑 다음 영화 같이 안 할 거야?”

“어느 세월에?”

“임박했어. 나 못 믿어? 이제 곧 포텐 터질 거야. 차기작 소문 들었으면 알 꺼 아냐?”

“이번엔 믿어도 되는 거냐? 이 사기꾼 놈아?”


준철에게 나는 사기 전과 1범이었다. 2년 전 준철은 한국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외국으로 뜨겠다고 했다. 출국 며칠 전이었을 것이다. 나는 준철 집 근처 카페에서 준철을 만나 행운을 빌어주며 차기작 들어갈 때 꼭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준철은 뜬금없이 사기치지 말라고 정색하고 화를 내더니 먼저 일어나서 나가버렸고 1년 가까이 연락이 두절됐었다.


황당했지만 따지고 보면 사기를 친 게 맞다. 준철과의 첫 미팅 때 영화 속 베드씬에 대해 걱정하는 준철에게 이건 에로영화가 아니라 예술영화고 해외 영화제에도 나갈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준철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진짜 배우로 만들어주겠다고 장담했었다.


준철은 나의 기세에 감동했는지 그럼 나만 믿겠다며 대담하게 성기와 음모 노출까지 감행했고 베드씬에선 듣보잡 에로 배우들과 몸을 사리지 않는 혼신의 열연을 펼쳤다. 준철의 열연에 감동한 나는 왜 그렇게까지 몸을 사리지 않는 거냐고 물었고 준철은 “그냥 하는 거지. 이유가 따로 필요해? 나는 배우잖아!”라고 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영혼을 갈아 넣어 촬영한 영화는 영화제 진출은 커녕 극장에도 제대로 걸리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기자들에게도 외면당해 기사조차 거의 없었다. 남은 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준철의 성기 노출 짤방과 베드씬 뿐이었다.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이건 내 잘못은 아니고 마케팅 비용을 쓰려다 만 투자사 또는 제작사 탓이다. 영화를 열심히 만든 죄 밖에 없는 나는 그저 억울할 뿐이다. 상심한 준철에게는 관객수가 적다는 건 아직 영화를 본 관객이 적다는 뜻이기도 하니 언젠가 좋은 시절이 오면 분명 역주행할 거라고 재평가 받을 날이 올 거라고 위로했지만 준철은 그냥 죽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사기꾼이라는 비난에 할 말이 없었고 그저 다음 작품은 잘 될 거라는 말만 반복하는 나에게 준철은 A4 한 장을 건넸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꼴리는 영화’ 주연배우 정준철.’


“이게 뭐야?”

“유서.”

“장난이 심하잖아? 형이 왜 자살을 해.”

“장난 같냐?”


글씨체는 삐뚤빼뚤 어린애 장난 같았지만 준철의 눈빛은 장난이 아니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이대로 준철이 자살해 버린다면 내 영화 인생도 여기서 끝이다.


“넌 분명히 에로가 아니라 예술영화라고 했어. 나를 진짜 배우라 만들어준다는 니 말도 믿었고. 왜 거짓말 했어?”

“예술영화로 만든거야! 그것만은 믿어줘.”

“‘꼴리는 영화’를 누가 예술영화라고 생각할까?”

“제목은 내가 지은 거 아니라니까? 그건 막판에 제작사에서..”

“사기꾼 말을 믿으라고?”

“사기꾼 취급 좀 그만해! 도대체 몇 년 째야? 벌써 10년이야. 평생 나만 원망하며 살 거야? 형도 이제 재기해야지?”

“사기가 별 거냐? 약속을 못 지키는 게 사기지.”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이번엔 정말 된다니까?”

“믿을게. 그럼 진짜 미안한데 자살 안 하고 기다려줄테니까 돈 좀 꿔주라. 형 어려워 요즘에.”

“알았어. 얼마?”

“천만 원.”

“백만 원.”

“쪼잔한 새끼. 알았다. 그거라도. 차기작 계약하면 갚을 테니까 걱정 말고.”


지난 10년간 이런 식으로 준철에게 빌려주고 못 받은 돈이 최소 천만원은 될 것이다.


“고맙다. 덕분에 한 달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우면 유서는 필요없는 거지?”


난 준철이 건네준 유서를 박박 찢어버렸다. 그런데 문득 준철이 죽는다고 내 차기작이 무산되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연배우가 죽으면 자연스레 영화가 다시 주목받을 테고 그러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 중에는 제목에 가려졌던 영화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가 있을 것이고 감독으로서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데뷔작을 재평가 받는다면 차기작 메이드도 훨씬 쉬워지지 않을까? 아니다. ‘꼴리는 영화’는 이제 그만 잊자. 나에겐 ‘가족사냥’이 있다.


준철은 내가 부르자마자 잽싸게 달려오고 백만 원도 빌려주겠다고 하니까 기분이 풀렸는지 멀쩡해 보이는 얼굴로 돌아와 주연은 안 된다는 거 자기도 아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냥 조연이라도 시켜주면 감지덕지하겠다고 했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준철은 절대로 자살할 스타일이 아니었다. 내가 차기작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유서에 내 이름을 써 놓고 자살쇼를 펼치며 차기작 캐스팅을 요구한 것 뿐이다.


준철에게 시달리고 집에 오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죽은 듯 잠이 들었고 기를 너무 빨려서인지 다음 날 늦잠까지 잤다. 빵 한 조각을 먹고 회사에 갔는데 아직 점심 시간이 끝나지 않아서인지 다들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리고 내 감독방도 텅 비어 있었다.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두리번 거리는데 마침 석 팀장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내 방 어떻게 된 거야?”


석 팀장은 말 없이 다가오더니 내 손목을 잡고 소회의실로 이끌었다.


“오늘부터 이 방 쓰시죠. 감독님. 배우 미팅도 하셔야 하는데 예전 방은 너무 좁잖아요. 어때? 마음에 들어?”


소회의실은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고 원래 내 방보다 훨씬 넓고 커서 진정한 감독 방 다웠다. 마음에는 들었지만 부담스러웠다. 하루 아침에 대우가 업그레이드된 건 순전히 ‘가족사냥’ 때문인데 만약 내가 쓴 게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다시 예전으로 아니 그보다 못한 신세로 몰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바늘 방석이 따로 없다. 언젠가 이 방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싱숭생숭한 가운데 석 팀장은 소회의실 이제부턴 내 감독 방 문을 닫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가족사냥’ 말인데.. 이대로 찍을 건 아니잖아?”

“그렇지. 아직 부족해. 대대적으로 손을 보려고.”

“대대적으로? 에이.. 그럴 필요는 없고.. 어제 우리끼리 회의를 했거든. 한 번 읽어볼래?”


석 팀장은 잠깐 기다리라며 ‘가족사냥’에 대한 기획팀 모니터 의견이 정리된 페이퍼를 들고 왔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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