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지 않는 공평한 시간이
하얗게 부서지고
변화무쌍한 세월에
뾰족한 인생도 둥글어졌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지만, 내 마음의 창을 들여다보려면 매개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거울, 물, 혹은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와 같은 것 말이다. 매개물 없이 그저 두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는 점에 있어서, 타인의 창을 바라보는 편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나를 비추는 창이 울퉁불퉁하다면 비치는 나도 울퉁불퉁해 보인다. 내 시선이 편협하고 옹졸하면 스스로를 과대 평가하거나 과소 평가하는 법이다. 그 삐뚤어진 시각은 타인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가끔은 내가 희뿌연 게 아니라 날 바라보는 안경이 더러운 때도 있다. 그 어떤 불순물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와 당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려면 안경도 깨끗이 닦고 눈을 끔뻑거려야 한다.
글과 그 글을 쓴 사람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여서, 스스로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글은 횡설수설하고 변덕스럽다. 비단 글뿐이랴. 사람도 매한가지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읽어내기 위해선 나로부터 거리를 두고, 수많은 매개체를 거쳐 합리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돕는 시선이 나와 너, 우리와 이 세상을 보다 더 발전적으로 굴러가게 만든다.
만일 누군가, 글 쓰는 이가 가져야 할 기본적 소양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자기 인식과 자기 이해라고 답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적어낸 서투르고 거짓된 글들보다, 진정성에 뿌리내린 글은 힘이 있다. 설익은 자기 확신일지라도, 스스로의 마음과 생각을 진솔하게 읽어낸 순간의 글은 매력적이다.
시민교양 혹은 삶의 기본적 소양에 대한 질문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매일의 삶이 이어지는 나의 일터와, 수없이 반복되는 나의 숭고한 노동들을 어떻게 삶의 자산으로 치환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 그에 관하여 내가 찾은 한 가지 개똥철학은 자기 이해 없는 성장은 없고, 자기반성 없는 성숙은 없다는 것이다.
조용히 밀려왔다 가는 파도를 바라보며 몽돌 해변을 걷던 날, 햇빛 한 자락 없는 어둠이 하늘을 덮었으나 때는 분명 낮이었다. 실버라이닝을 그리는 해와 잠시 눈이 마주친 것도 같다. 넘침 없이 흘러왔다가 부족함 없이 물러서는 시간 속에서, 희게 부서지는 포말은 모두에게 공평했다.
차르르, 쓸려 내려가는 돌들이 자신의 무게만큼 굴러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시간, 여전히 뾰족한 모서리에도 맨들 맨들한 둥근 눈이 반짝이고 있다. 돌은 파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자신을 깎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