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by 끌레린

몸이 아파 첫눈이 오는 것을 27층 창안에서 느껴야 했습니다.

그래도 지인들이 보내준 사진들 덕분에 제 감상을 몇 작 적어봅니다.


앙상한 뼈대만 남았던 검은 나뭇가지들이

눈부시게 새하얀 갑옷을 순식간에 두른 채

두터운 몸을 버티며 서있다.

칠흑 같은 아스팔트 위를 덮은 눈은

빛을 반사하는 거대한 광장을 만들어낸다.

늦은 밤 반짝이는 샛노란 가로등 불빛을

안개처럼 빨아들인다.

촘촘히 쏟아지는 눈발 속

도로변에 갇혀버린 차량들이

흰 덩어리가 되어 듬성듬성 실루엣을 드러낸다.


도시의 밤은,

곧 정지된 거대한 풍경화로 바뀐다.

평소라면 어지러웠을 퇴근길 저녁이,

하얀 첫눈이 강제로 부여한 고요한 여백에

잠겨 버렸다.


세상의 복잡한 색이 모두 지워진 것처럼,

내 안의 복잡한 감정들도

이 순백의 정지 앞에서 잠시 맑아진다.


순백의 눈이 모든 것을 지운 지금,

오히려 변하지 않는 본질만이 선명하게 남는다.

차가운 시간 속 아름답게 빛나는 불빛처럼,

내 삶에서 변치 않는 진실은 무엇인가.



#겨울풍경 #첫눈 #자아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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