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새롭고, 서툴렀던 인턴 시절
학교 졸업 전 인턴에 합격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첫 회사.
비록 6개월간 근무하는 인턴이었지만 취업했다는 안도감과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렘이 좋았다. 내가 전쟁터에 뛰어드는 줄도 모르고.
첫 회사는 여자 비율이 거의 9:1 정도로 여초 기업이었고, 팀장급도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젊은 회사였다.
여러 사업분야가 있었던 회사는 내가 취업 전 했던 활동들을 보고 취업사업팀에 발령을 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발령이 내 인생에 큰 역할을 했다.)
입사 후 한 달 간은 교육을 들으며 팀의 자잘한 일을 도왔다. 알바가 할 수 있는 수준의 자잘한 일이었다.
교육은 회사 내 시스템과 주의할 사항, 회사 사업분야에 대한 교육이었다.
취업과 함께 시험과는 안녕일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회사의 역사와 제품, 실제 쓰는 용어와 사업분야, 교재 라인업, 부록의 구성까지 항상 시험을 봤고 기준점을 넘지 못하면 틀린 문제를 깜지를 써서 제출해야만 했다. (도대체 언제 적 깜지인가.. 요새도 쓰나) 시간표대로 교육을 듣고 시험을 보다 보니 다시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시험은 인턴 기간뿐만 아니라 재직 중에도 계속되었다. 전 직원이(팀장급 포함) 회사 내 사용되는 용어 시험, 직원들이 자주 틀리는 맞춤법 시험 등을 보면서 전체 게시판에 시험점수와 전체 등 수를 게시하는 일도 있었다. 일정 등수 이하는 어김없이 깜지 제출이었다. 물론 마케팅 직무수행을 위해 사업분야를 모두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당시엔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교육과 팀 업무 이외에, 매주 회사의 사업 분야를 분석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거나 사이트를 활성화 할수 있는 마케팅 방안 수립등의 과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 중 괜찮은 내용들을 선별하여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인턴의 발표가 끝나면 팀장 및 임원들의 질의가 이어졌고, 대답을 못하거나 아이디어가 허술하면 질책이 이어졌다.
네가 그렇게 멍청하니까 너희 팀이
수익도 안나고 그 모양인 거야!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뇌리에 박힌 하루는 내가 발령 났던 취업팀 관련 주제로 발표하는 날이었다.
우리 팀은 다른 팀에 비해 수익이 나지 않는 신생 팀이었고, 그만큼 인턴들의 과제 아이디어도 다양하게 나왔다.
질의응답 시간에 임원 중 한 분이 우리 팀 팀장에게 아이디어 적용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팀장님이 대답하기 곤란했는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질문이 정확히 뭐였는지가 기억이 안 난다..)
그 순간 그 임원이 팀장님에게 "네가 그렇게 멍청하니까 너희 팀이 수익도 안 나고 그 모양인 거야!"라며 폭언이 쏟아졌다. 다른 팀장들과 인턴 20여 명이 보는 자리에서..
순식간에 분위기는 얼어붙었고 우리 팀 팀장님은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내가 욕을 먹은 것도 아닌데 내 얼굴도 화끈 달아올랐고 왠지 미래에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여기가 정말 전쟁터구나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던 날이었다.
과제와 발표가 진행된 후 6개월 인턴이었지만 암암리에 한 명씩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졌다.
주로 과제와 발표를 잘하거나, 잘 나가는 팀에(매출이 좋은 or 방문자수가 높은) 소속되어 있는 동기들이었다.
최소한의 총알과 체력만 가지고 아무것도 모른채 전쟁터에 뛰어든 나는, 대열의 끝자락에서 힘겹게 그 시간을 보냈다.
최선은 학교 다닐 때나 대우받는 거고, 직장은 결과만 대접받는다.
- 미생 오상식 과장 대사 中
결과적으로 나는 발표 하나도 못하고 이렇다 할 성과가 없이 인턴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회사에선 우리 팀에서 일하는 인턴들 모두 1년 계약직을 제안하였고 나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